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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Dec 21. 2020

[작문연습22] 갑질

- 그래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니

 전후 폐허가 된 한반도에 남은 건 사람뿐이었다. 공장도 자원도 모두 파괴돼 국가 경제는 마비 상태였다. 오직 인간의 노동만이 남은 것이었다. 정부는 이를 활용해야 했고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그로 인해 공고한 계급처럼 작동했던 기득권의 지위가 흔들렸다. 보통사람들이 노력을 쏟을만한 사회적 토양이 만들어졌다. 열심히 일하면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들의 노력은 개인의 번영으로 이어지는 데서 그치지 않았고 오늘날 세계 11위 경제 대국으로 이어졌다. 소위 개천에서 용 나타나기 시작했던 때의 이야기다.


 이제 그런 시대는 저문 지 오래다. 새로운 계급 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계층이라고 부른다. 계층은 본래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집단을 의미하는 말어다.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다. 초졸, 중졸, 고졸, 대졸 등 학벌에 따른 계층 표를 그려 볼 수도 있다. 혹은 소득에 따라 1분위에서 5분위로 올라가는 소득 간 계층도 존재한다. 정부는 정책을 입안할 때 계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곤 한다. 계층에 따라 정책의 효과와 목적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층 구분은 국가 경영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계층은 마치 계급의 변주처럼 작동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당성을 인정받은 계층은 공고한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보통사람이 노력할 만한 이유를 상쇄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노력해도 더 나은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뼈 빠지게 일해도 현상 유지에 그치는 사회는 발전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옛 명칭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21세기의 계층 사회에서 계층 간 이동의 장벽은 19세기 계급 사회만큼이나 공고하다.


 갑질에 대한 호소가 증가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모든 갑질이 다 같은 갑질은 아니다. 본래 갑질은 계약서의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이 을에게 불공정을 강요하는 것을 의미했다.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남양유업 갑질도 이와 같은 경우였다. 그러나 최근 발생하는 갑질은 계약 관계만을 전제하진 않는다. 계약 이전에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계층이 갑질의 근거가 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이 순간 계층은 계급과 동의어가 된다.


 갑질은 비단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 사이에서만 발생하진 않는다. 사회 시스템 또한 이러한 갑질을 옹호하고 있다. 힘 있는 자들에게 관대한 사법 시스템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일터에서 일하다 죽는 사람이 하루에만도 6-7명에 이른다. 이들 중 절대다수가 하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일 것은 자명하다. 이들의 죽음에 책임 있는 사람은 있으나 보이지 않는다. 사회 시스템이 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계층 간 경계는 더욱 뚜렷해진다.


 전후 한반도와 비교했을 때 지금 이 땅에는 많은 것이 넘치고 있다. 기술도 돈도 인력도 넘친다. 어찌 보면 넘치는 자원 때문에 계급이 된 계층과 갑질을 없앨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변화할 이유가 없는 자들이 변화시킬 힘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하위 계층의 사람들, 피라미드의 가장 밑에 깔린 사람들의 미래는 여전히 긴 터널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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