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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Dec 24. 2020

[작문연습23] 이주노동자

- 차이를 차별의 구실로 삼을 권리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한다. 선사시대 선조들의 습성이 현생 인류의 DNA에 각인된 탓이다. 사냥에 나선 선조들에게 수풀에서 튀어나온 괴생명체는 그 자체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협으로 작용했다. 이는 비단 물리적 공격만을 뜻하진 않는다. 우리와 다르게 생긴 존재와의 잠깐의 스침도 병원균 감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16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도,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을 말살한 천연두도 그런 식으로 작동했다.


 과학의 발전은 차이와 차별의 메커니즘을 분해하는 데 일정 정도 기여했다. 차이가 일으키는 화학작용이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만 년에 걸쳐 습득된 본성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비교적 최근까지 단일민족주의 신화 속에 빠져있던 한국 사회에서 차별의 기제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곤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차이가 차별로 직결되는 대상은 주로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을 향한 차별은 사회·문화·제도 전반에 걸쳐 진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도 선택적으로 발동되곤 한다. 이주노동자를 이야기할 때 금발의 백인을 떠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동남아시아 사람을 상상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난하고 낙후한 후진국에서 온 이들로 여겨진다. 그 순간 우리는 우월한 지위를 점하는데, 그 지위는 금발의 백인들 앞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다. 우리 안의 뿌리 깊은 사대주의다.


 이주노동자 다수는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일하는 게 사실이다. 내국인들은 기피하는 일이나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처우도 좋지 않다.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하며 밭일을 하고,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제조업에 종사하며 장시간 근로에 노출된다. 직업선택의 자유도 제한받은 채 격무에 시달리는 이들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는 산업들이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의 노고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울타리 밖 존재다. 법과 제도가 이들을 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명백한 인권침해를 당해도 참고 버티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여라도 고용주에게 밉보여 취업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에 노출되는 사례도 잦지만, 고용주와 이주노동자 간 갈등에서 우리 사회가 손을 들어주는 쪽은 열에 아홉이 고용주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다. 향후 이주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차이를 차별의 구실로 삼을 권리가 있는지 반문해야 한다. 더 이상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게 방치해선 안된다. 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본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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