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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Jan 12. 2021

[작문연습30] OTT

- 플랫폼이라는 원형경기장의 객석에서

 인간의 꼬리뼈는 진화의 흔적이다. 진화 과정에서 쓸모없어진 꼬리가 퇴화를 거듭하다 지금의 길이에 이르렀다고 한다. 진화에 목적은 없다지만, 더는 사용되지 않아 거추장스러워진 신체 기관이나 능력이 퇴화 목록의 우선순위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 덕에 꼬리는 사라졌고 그 흔적만 남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인류 문명은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문명 발전에 가속도를 부여한 문자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문자를 통해 기록을 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정보를 기억해야 할 부담이 줄었다. 대신 일정 정도 기억력의 악화는 감내할 것이었다. 오늘날 문명 발전의 동력으로 기능하는 디지털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순식간에 천문학적인 수치를 다룰 힘들 갖게 됐으나, 인간 자체가 지닌 연산 능력은 점차 퇴화 중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와 유튜브의 사례도 특기할 만하다. 바깥 외출이 줄어든 지금 이들 플랫폼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들은 이용자 개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최적의 콘텐츠를 추천한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콘텐츠를 찾아다니며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의 부담은 알고리즘의 몫이 됐다. 그 덕에 우리는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으나 그만큼의 인내력과 탐구력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21세기 인류 문명의 꿈은 AI다. 문명의 첨단에 서 있는 이들은 모두 AI가 만들어 낼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 그러한 시대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전례 없는 해방을 만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적·육체적 부담은 모두 AI가 대신 감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신체 능력의 퇴화도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 퇴화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맹점은 AI가 힘 있는 소수의 이익에만 복무하게 될 가능성이다. 소수가 기술적 우위를 독점한 채 다수에 군림했던 역사는 차고 넘친다. AI 시대의 기술 독점이 야기하는 파급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비관적인 전망 속에서 올더스 헉슬리가 구상한 <멋진 신세계>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소수 권력자가 던져주는 빵과 포도주에 취해 플랫폼이라는 원형경기장의 객석에서 본래 우리가 갖고 있던 잠재력과 능력은 잊히고 퇴화하는 그런 미래 말이다.


 물론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실현될 가능성이 적은 미래 때문에 AI를 무조건적으로 배격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 다만 미래 기술이 창조할 번영이 모두에게 같은 크기로 찾아오는 미래를 구상하긴 힘들단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니 종종 상기해야 한다. 나는 첨단 기술에 나의 어떤 잠재력을 대가로 내가 감당해야 했을 부담을 전가하고 있는지. 세상에 공짜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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