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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Jan 16. 2021

[작문연습34] 감기

-사회적 고통에 무감할수록 그 후과도 커진다

 감기는 일상의 경보음이다. 면역력이 떨어졌거나 주변 환경이 부적절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요즘같이 춥고 건조한 겨울철엔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활개를 친다. 감기를 원천 차단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절대적인 치료법도 없다. 대증요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열이 오르면 열 내리는 약을 먹고, 기침이 나면 기침이 멎는 약을 먹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감기라는 경보음이 울리지 않도록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감기 외에도 인간의 신체가 느끼는 모든 고통은 경보음이다. 신체에 문제가 있으니 돌보라는 신호이자 부적절한 환경을 피하라는 경고다. 혹자는 인간의 고통이야말로 험한 진화의 과정에서 가장 훌륭한 도구였다고 말한다. 고통을 느끼고, 기억하고, 학습함으로써 상처 입을 환경을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티끌만 한 상처도 감염에 의한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고통에 둔감했다면,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종종 유기체처럼 표현되곤 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야 건강한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곳이라도 오작동할 시에 공동체 전체의 생존은 위험에 처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도 인간의 육체처럼 고통을 느끼곤 한다. 사회적 약자의 곤궁함이 그것이다. 뜨거운 불에 닿은 손을 빠르게 뺄 수 있는 이유는 고통의 신호가 빠르게 뇌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고통도 빠르게 사회 중심부로 전해져야 더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사회적 고통이 없는 사회는 없다. 고통에 빠르게 반응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만 있을 뿐이다. 전자의 사회는 사회적 약자의 곤궁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결과가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의 사회는 사회적 약자의 곤궁함을 애써 외면한다. 그들의 고통과 나의 삶을 별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방치한 결과는 참혹하다. 경제적 양극화는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지고, 봉합이 전제되지 않은 사회적 갈등으로 공동체는 파멸로 향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무통 주사를 맞은 듯싶다. 사회적 고통은 있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없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의 무통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산과 소득의 격차는 점차 심화하고 있다. 교육 격차도 심각하다. 모든 격차들이 한데 모여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했다. 사회의 중심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제 임무를 방기하고 있다.


사회적 고통은 감기와 닮아있다. 일단 피할 수 없다. 원인이 불명확해 대증요법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감기는 휴식을 취하면 쉽게 나을 수 있다. 감기약은 편의점에서 살 수도 있다. 반면 사회적 고통은 아니다. 사회적 고통을 치유할 능력은 불평등한 자원이다. 지금 우리는 고통을 치유할 의지가 없는 이들이 모든 약을 손에 쥐고 있다. 사회적 고통에 무감할수록 그 후과도 커진다. 그 임계치가 어디일까. 그리 멀지 않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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