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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Jan 18. 2021

[작문연습35] 키보드워리어

-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뭉개졌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영화 <매트릭스>에서 관객의 뇌리에 가장 깊게 남은 장면은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을 건네는 장면일 것이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선택권을 준다. 어떤 약을 고르냐에 따라 기계가 지배하는 가상의 세계에서 안온한 삶을 살 수도,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 세계에 발을 딛게 될 수도 있다.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괴리를 빨간약과 파란약을 통해 제시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두 약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있다.


 인간사의 토대를 구성하는 경제 영역에서 우리의 위치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주된 산업 영역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이제 팡(Faang)이 없는 현대인의 삶은 상상할 수 없어졌다. 구글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인스타그램 등 페이스북 산하 기업들의 SNS를 통해 친구들과 소통한다. 여가에는 넷플릭스가 필수다. 가상의 세계를 개척해나간 이들이 경제 영역에서 주류의 자리를 점했다. 그러자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뭉개졌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양식도 현실과 가상을 오가고 있다. 오프라인의 다양한 인간군상이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자 그들의 다양성은 더욱 배가됐다. 그에 따라 새로운 갈등의 장이 만들어질 것 또한 당연했다. 이곳에서 활약하는 이들은 오랜 시간 ‘키보드 워리어’로 불려 왔다. 이들 중 다수는 오랜 시간 현실의 신분을 숨긴 채 활동해왔다.


 최근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키보드’를 벗어던지는 이들도 나타났다. 두 공간 모두에서 활약하기를 즐기는 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대체로 화려한 언변과 탄탄한 논리로 무장한 이들이다. 반면 여전히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있는데 몇몇은 근거 없는 소문과 인신공격을 소일 삼아 가상의 세계를 배회한다. 전자의 부류는 과거 인쇄 매체 속 논객의 지위를 점해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후자의 사람들은 익명을 무기로 악플러의 정체성을 키워간다.


 온라인 문화가 나타난 지 20년 넘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영역은 무한한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악플러의 잔혹함도 날로 더해가는 양상이다. 이들은 선량한 사람들이 의사표현의 자유를 위해 소중히 지켜온 익명성의 가치를 좀먹고 있다. 그간 정부와 각 온라인 매체들은 악플 근절을 위해 각종 캠페인을 벌여왔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댓글 실명제가 여전히 주된 해법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다행은 악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악플이 한 사람의 목숨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악플에 대한 법정 대응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 결과다.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려진 마당에 악플러가 언제까지고 키보드 워리어라는 이름 뒤에 숨어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방이 불가하다면 남은 건 법적 처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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