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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Jan 21. 2021

[작문연습37] 위기

- 기존의 질서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은 상황.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위기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2020년은 위기의 해였다. 세계 질서를 지탱하던 두 개의 축이 무너진 한해였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유지돼 온 서구 패권과 개발 중심 논리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두 축의 몰락을 가속화했을 뿐, 새롭게 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유럽과 미국이 구축한 서구의 패권은 코로나 이전부터 위기에 직면했었다. 세계대전에 이어 동구권과의 이념 전쟁에서도 연달아 승리한 이들은 경제적, 정치적 정당성을 무기로 세계 질서를 장악해왔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심화하는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는 데 무심했다. 그 결과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사회 내 갈등이 격화됐다. 서구 패권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균열마저 생기게 됐다. 새로운 패권을 꿈꾸는 중국은 이 틈을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산업혁명 이래로 지속돼 온 개방 중심 논리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잇단 자연재해가 개발논리에 경종을 울렸다. 유래 없이 거대한 규모의 산불과 홍수가 세계를 집어삼켰다. 여름 내내 이어진 장마로 많은 수재민이 발생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자연재해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후 현상의 연장이라고 진단한다. 점차 심해지고 있는 자연재해를 멈추는 방법은 이산화탄소를 무한점 뿜어대는 기존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올해 전 세계가 옛것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그러나 새것이 탄생하는 장면은 아직 상영되기 전이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당장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와 중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 사이에 끼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을 외치지만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는 양다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세안 10개국과의 관계 구축이 옛것을 대체할 새것이 될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 가능성 또한 불투명하다. 기존 개발논리에 잘 적응한 결과로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 됐다. 한편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됐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 넷 제로를 공언했으니 구체적인 로드맵은 여전히 부재한 상황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진부한 상투어다.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위기는 벼랑 끝에 매달린 형국과 다를 바 없다. 전후 유래 없는 성장을 경험한 우리는 기존의 질서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다음 질서를 준비하는 데 미흡했다. 그 후과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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