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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Feb 07. 2021

[작문연습45] 지하철

- 처벌받지 않은 죄를 반성할 사람은 없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주체가 사람인 이상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란 힘들다. 그 때문에 범법을 저지른 이들은 법적 책임을 끝낸 뒤에도 전과자 신분으로 사회생활을 하곤 한다. 전과 기록을 누구나 아무 때나 열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과자에 대한 차별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지은 사람을 미워하는 사회에서 전과 기록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사람은 빼고 죄만 미워하라는 자비의 말씀이 공허한 이유다.


 그럼에도 이 같은 자비가 허용되는 대상이 있다. 14세 미만 청소년이다. 이들은 촉법소년으로 불리며 형사법적 책임을 면제받는다. 범법을 저지른 14세 미만 청소년은 형벌 대신 교정과 교화에 초점을 맞춘 보호처분을 받는다. 장래를 고려해 전과도 남지 않는다. 이 때문에 촉법소년 제도를 둘러싼 찬반 갈등은 언제나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흉악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건 정의롭지 않다는 주장과 미성숙한 시기의 실수가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이 맞붙는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촉법소년 논쟁이 주류 미디어로 소환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됐던 사건은 경기도 지역의 한 중학생이 지하철에서 노인을 상대로 욕설과 폭행을 저지른 일이다. 해당 중학생들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영상으로 촬영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노인을 폭행한 학생은 노인복지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별금형에 처해질 수 있는 혐의이지만 촉법소년으로 형사 입건은 불가능하다.


 여론은 곧바로 들끓었다. 나이가 어려도 죄와 사람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현행 촉법소년제의 취지를 받아들이더라도 노인 폭행처럼 정도가 심한 범죄에 대해선 예외 조항을 둬야 한다는 제안도 잇따르고 있다. 발 빠른 정치인은 촉법소년 연령을 12세로 하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반면 처벌 강화가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소년원 출신 청소년의 재범률이 높은 것을 봤을 때 계도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안정한 청소년기의 실수를 처벌 강화로 대응할 시 향후 사회적 비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특히 미성년은 각종 실수가 잦은 시기로 실수를 통해 세상을 배워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실수를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같게 취급할 수는 없다. 어떤 죄는 사람과 떼어놓고 죄만 미워할 수도 있지만, 도저히 사람과는 떼어낼 수 없는 죄도 있다. 청소년은 실수에 대해 관대한 시선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필요하다. 처벌받지 않은 죄를 반성할 사람은 없다. 죄와 사람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도 계도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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