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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Feb 07. 2021

[작문연습46] 비밀

- 비밀 폭로의 형식을 띤 정보의 파급력

 1950년대 초 미국은 공산주의자 색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중심엔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있었다. 매카시는 미국 사회 요직 곳곳에서 암약하는 공산주의자 스파이 목록을 갖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후에 그의 손에 든 자료가 허풍과 과장으로 뒤섞인 거짓된 자료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당시에 매카시의 근거 없는 주장은 신문지면을 거치며 대단한 비밀자료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됐다. 어느 사회나 비밀 폭로의 형식을 띤 정보의 파급력은 그렇지 않은 정보에 비해 막강하기 마련이다. 매카시의 입에 온 나라가 집중했다.


 언론이 주목하면 하찮은 정보도 중요한 정보처럼 대중의 이목을 끈다. 언론이 탄생한 이후 항상 그래 왔다. 최근엔 그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정보 과잉 시대에 언론이 옥석을 가리는 일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 치이는 현대인은 언론의 필터를 거친 정보를 수용해 정보의 경중을 따진다. 이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주목받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정보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중 별것 아닌 정보를 언론의 ‘단독’ 보도를 통해 고급 정보로 둔갑시키는 것은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일이다.


 얼마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조치 감사 방해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이 산업부 공무원이 삭제한 530개 자료 목록을 찾아냈다. 그중에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문건도 있었다. 보수 야당은 곧바로 정부가 이적행위를 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산업부는 6쪽짜리 해당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명시돼 있었다. 북한과의 에너지 협력을 대비해 만든 아이디어라는 산업부의 해명도 있었으나 보수 야당의 비판은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한국 정부가 몰래 북한에 원전을 짓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고 국제 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용해야 한다. 또한 경수로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허가도 필요하다. 미국은 우리 정부가 북한에 보내는 감기약도 제재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언론과 정치인은 없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는 과장된 주장이 언론인과 정치인의 입을 통해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사건이 이토록 비화한 건 정부의 탓도 있다. 문건 삭제 경위를 속 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다. 정보의 공백이 언론과 정치인의 상상력을 거치며 엄청난 비밀 정보로 변모한 양상이다. 정보의 함의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대신 아니면말고식 의혹 보도를 양산하는 언론의 책임도 작지 않다. 정치인이 제기한 의혹이 언론 보도를 통해 강화되면 해당 보도를 정치인이 다시 인용하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매카시 광풍은 5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사이 미국 사회는 상호불신 사회로 진입했다. 수백, 수천 명이 소련 스파이로 의심을 받으며 오랜 시간 고통받았다. 한 정치인의 거짓 폭로가 언론을 통해 기밀 폭로로 둔갑했고 미국 사회는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온 나라가 판데믹에 신음하고 있다. 공통의 과제를 두고 상호 갈등만을 조장하는 정보 경쟁에 몰두하기엔 사회적 자원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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