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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Feb 08. 2021

[작문연습47] 차례

- 반드시 지내야 한다던 차례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장남과 결혼한 덕에 명절 차례상은 항상 우리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차례를 지내기 며칠 전부터 시장을 오가며 상차림을 준비해야 했다. 난 명절 준비의 고단함을 모른 채 엄마 따라가는 시장 구경을 즐기곤 했다. 머리가 조금 크고 난 뒤에야 차례 문화의 부조리함을 알게 됐다. 엄마는 명절 차례는 지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들은 적은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우리집은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되는 친척들과 간소화된 명절 음식을 먹는 정도로 명절 행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지내야 한다던 차례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최근 우리집처럼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 늘고 있다고 한다. 차례에 빠지면 험한 소리를 듣던 때가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불과 십 년쯤 전의 일이다.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지내는 차례 문화는 빠른 속도로 간소화되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사라지는 전통과 관습이 차례만은 아니다. 한민족 역사가 5000년이라고 하는데 단군 이래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전통과 관습이 탄생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삶의 방식이 변하면 문화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인의 생활상이 변화해 온 데 비하면 차례는 질긴 생명력을 보여온 셈이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영원한 건 절대 없다. 생성과 소멸을 경험하는 건 우리가 절대적 가치처럼 여기는 신념, 이념, 사상, 철학 등도 마찬가지다. 정말 소중히 여기는 가치도 유통 가능한 기한이 있다. 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도시화와 세계화를 거치며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가치의 유통기한도 점차 짧아지는 중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추종하는 가치를 절대적 가치처럼 여기는 이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종종 자신만의 가치를 사회 전체가 좇아야 할 가치로 상정하곤 한다. 유통기한이 다한 가치를 나홀로 소중히 여기면 아무 문제가 없다. 사회 전체로 유통하려 할 땐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를 바꿀 힘이 있는 이들이 그러한 생각을 품을 때 사회적 폐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현세의 삶과 조화되지 못하는 전통과 관습은 역사적 소명을 끝마치고 박물관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양한 삶의 양식과 성평등 문화를 포용하지 못하는 명절날 차례 문화도 마찬가지다. 차례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미풍양속이라면 앞으로도 이어질 테지만. 설령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명절 문화가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다. 홀로 유유자적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신념이 타인의 삶과 조화될 수 없다면 그 신념도 사회적 수명을 다한 것이다.


 차례가 사라지니 명절 아침 우리 집은 더 화목하고 더 여유로워졌다. 몇 일가친척들은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정말 아쉬우면 본인들이 직접 하면 될 일. 다들 아직 그 정도로 아쉽진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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