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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Jul 15. 2020

[한국영화] <오발탄(1961)>

-식구(食口)

#<나라야마 부시코(1983)>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는 19세기 일본 산골을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마을에서의 삶을 암시하듯 첩첩산중을 조망하며 시작한다. 작은 마을은 그곳 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온 세상이다. 그곳은 고립된 섬이자 오갈 데 없는 세상의 끝이다. 쉬는 날 없이 온 가족이 생계에 매달려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이며 마을의 모든 전통과 관습은 입에 그것을 위한 방편이다.

 

     

#오직 첫째 아들만이 자식을 낳는 관습은 산골 마을의 혹독한 생존 환경을 투영한다. 식구(食口)가 늘면 식량은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이 마을에서 가족의 구성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일은 당위에 가깝다. 첫째가 낳은 자식들마저 갓난아이 시기를 면치 못하고 버려지기 일수다. 그럼에도 딸은 생존확률이 더 높은데 팔아서 돈이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한편 일흔을 목전에 둔 노인들은 ‘나라야마’ 골짜기로 향한다. 생산력의 바닥으로 집단에서 추방되는 것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노인들이 나라야마에서 신선놀음을 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넘치는 부성애, 모성애, 효심이 집단 전체의 생존을 방해하는 요소로 손가락질당하는 곳이다.


      

#입에 풀칠하는 일은 <나라야마 부시코> 속 산골 마을에서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혹한 짐이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0.92명을 기록했다.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다. 경제난에 취업은 늦어지고, 집값은 떨어질 줄 모르는데 양육비 부담은 계속 증가한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혹자는 전쟁통에도 사랑은 꽃을 피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족의 형성을 전제로 한 사랑은 그 무게가 다른 법. 먹고 살기 팍팍할수록 사람들은 식구를 줄여야 한다. 이범선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1961)>은 모두가 ‘천근만근’ 짐짝인 시대의 가족에 대한 단상이다.



#전쟁의 상흔이 짙게 드리운 서울의 달동네. 송철호는 여섯 식구의 입을 채워야 하는 고단한 가장이다. 박봉에 시달리는 계리사로 심한 치통에도 불구하고 치료는 뒷전이다. 식구들을 먹여 살릴 책임을 진 그에게 자기 자신을 위한 식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식사를 식구에게 양보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치통이 그의 식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치통으로 음식을 씹지 못하는 그는 보리차로 식사로 배를 채운다. 치료할 수 없는 치통은 가난의 결과이다. 그러나 식구를 먹이기 위해서라면 본인의 식사는 포기해야 한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월급날에도  딸아이에게 신발 하나도 사주지 못하는 철호에게 치과에 가 치통을 치료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축 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온 철호를 기다리는 것은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는 노모가 내지르는 ‘가자!’라는 단말마 같은 외침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출산일도 다가온다. 그럼에도 철호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은 두 손으로 볼때기를 감싸고 아픈 이를 달래 가며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는 철호는 언젠가 터널의 끝에서 보일 빛을 희구한다.      


#그런 철호에게는 세 명의 동생마저 있다. 둘째 영호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다. 제대 군인으로 종종 전쟁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한다. 돈을 벌어 형이 진 가장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고 싶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 수년째 방황 중이다. 전후 피폐해진 나라의 상황은 일할 능력도 의지도 충만한 이들을 ‘천근만근 나가는 짐짝’으로 만들었다. 큰 포부와 함께 사회로 뛰어든 영호의 하루는 신세한탄과 함께 끝이 난다. '곰도 노루도'잡지 못해 이제 '토끼'를 잡으려 했으나 토끼보다 사냥꾼이 많은 현실에 좌절한다. 영호는 술에 취해 지껄인다. “그 조그마한 토끼란 놈이 20세기에는 맘모스란 말이야...”


     

#영호에게 형 철호는 존경의 대상이자 연민의 대상이다.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지만 죽은 자식의 부랄을 만지듯 되지도 않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신세다.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영호는 자신의 실패가 양심이라는 좁은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영호는 그것이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영호에겐 형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울타리 밖으로 벗어날 용기가 없어서 가난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영호는 자신을 나무라는 철호에게 말한다. “비틀렸어야 했어요. · · ·  날 때부터 비틀렸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죠.”     



#셋째 명숙은 사랑하는 이와의 혼인에 실패한다. 경식은 명숙과 사랑한 사이지만 상이군인으로 제대 후 짐짝이 되기 싫은 마음에 명숙의 구애를 거부한다. 경식은 서로가 서로에게 짐짝이 되는 시대에 자신 같은 이에게 혼인은 사치라고 말한다. 이별의 충격은 명숙 또한 오빠들처럼 생계전선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방황하던 명숙은 미군을 상대로 하는 매춘을 결심한다. 철호의 괄심에도 불구하고 명숙은 매춘을 지속한다. 가난하지만 ‘깨끗한’ 철호에게 명숙은 이미 양심의 울타리를 넘어간 존재다. 영호의 말마따나 ‘비틀린’ 존재다.      



#비틀리지 않고는 식구를 먹여 살리기 힘든 시대. ‘가난해도 성실한’ 삶의 태도가 나와 식구들의 안위를 보장해주지 못할 때, 공동체의 윤리는 불안정해진다. 마침내 영호도 비틀리기로 결심한다. 영호는 비틀림이야말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열쇠라고 믿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영호의 손에 들어온 총은 그의 용기를 북돋는다. 총과 용기로 무장한 영호에게 은행으로 향한다. 거사 직전 영호는 자신의 선택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려는 듯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온갖 허세를 부린다.      



#영호는 결심 끝에 비틀렸지만 결과적으로 식구의 입을 채우는 데는 실패한다. 비틀림은 총과 용기로 가능했으나 비틀림이 식구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다는 믿음은 유효하지 않았다. 좁은 양심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영호의 시도는 감옥 신세로 끝이 난다. 식구들로부터 자신의 입을 하나 줄이는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영호를 면회하고 돌아가는 길에 철호는 출산을 목전에 둔 아내가 위중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아내의 병원비조차 없이 병원으로 향하는 철호에게 명숙은 매춘으로 모은 목돈을 건넨다. 철호는 괄시해마지않던 명숙의 돈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도착한 병원에서 철호는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그렇게 식구가 하나 더 줄었다. 망연자실한 철호는 충동적으로 치과로 향해 명숙에게 받은 돈을 치통 치료에 소진한다. 치과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치통의 원인이었던 사랑니를 한 번에 여럿 뽑은 철호는 과다출혈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택시에 오른다. 철호는 스스로 줄어든 식구가 되기로 결심한 듯 정신을 잃는다. 곧게 살든 비틀린 채 살든 식구의 입을 채우기 힘든 사회. 그런 사회에서 오발탄 신세를 면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 사회는 오발탄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오발탄이 제 멋대로 터지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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