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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Feb 15. 2021

[작문연습53] 물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우리 사회의 단면

 유물론(唯物論)을 믿지 않더라도 물적 토대가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질적 기반은 인간 사회의 문화와 제도를 형성하는 모수였다. 때때로 물질과 관념이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다. 대체로 관념이 물적 변화를 거부하는 식이었다. 둘 사이 충돌의 역사에서 물적 토대의 힘은 관념보다 강력했다. 관념을 고집한 이들은 문명 저 뒤편으로 사라지기 일수였다.


 물적 토대가 지배하는 건 거대한 문명만이 아니다. 개인의 미시적 삶도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자본이 최대 가치로 추앙받는 요즘 시대에 그러한 경향성은 더욱 짙어진다. 근대를 열어젖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은 20세기 목전에서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장 보드리야르의 통찰이 대체했다. 내가 소비하는 상품이 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시대에 물질은 삶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국내 경제가 –1% 쪼그라드는 와중에도 명품 업계는 ‘나홀로 호황’을 누렸다. 사람들은 수백만 원을 넘나드는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 명품 상점 앞에 기다랗게 줄을 섰고 대기 줄 끝에서 명품이 동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위기 타파를 위해 전 세계가 양적완화를 펼친 덕에 자산 가격이 상승한 사람들이 명품을 소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소비가 존재를 규정하는 곳에서 명품은 존재의 가치를 높이는 수단이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값비싼 명품을 갖게 된 이들은 축하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 속에서 누구나 명품을 구매할 여력이 생긴 것은 아니다. 유행처럼 번지는 명품 열풍은 명품 소비가 불가능한 이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다가온다. SNS는 명품 열기의 유통로가 되고 있다. 중고등학생까지 명품 열풍에 올라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명품을 사줄 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생리에 단련된 어른들의 관념은 상대적 박탈감을 위로하는 데 익숙하다. 경제적 능력에 비례하지 않는 소비가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옷이 명품이라고 사람이 명품인 것은 아니란 경험칙도 얻는다. 반면 청소년기 상대적 박탈감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부모에겐 큰 상처로 남는다.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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