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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Feb 16. 2021

[작문연습54] 빵

- 학교 폭력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

 어느 순간 빵셔틀이란 단어가 실종됐다. 빵셔틀은 2000년 후반부터 2010년대를 풍미한 신조어였다. 교내 매점을 오가며 다른 학생의 빵 심부름을 하는 이들을 부르는 멸칭에서 유래했다. 당시 학교 폭력의 새로운 유형으로 세간의 관심을 촉구했지만 개그 프로그램 등에서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는 일도 잦았다. 소심하고 허약한 학생의 표본으로 그려지곤 했다. 당시 학교 폭력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은 딱 그 정도였다.


 최근 스포츠 스타들의 학창 시절 학교 폭력 전력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폭로 대상이 된 선수들은 바른 이미지와 우수한 실력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이었다. 그 때문에 이번 폭로에 사람들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이들의 학교 폭력 전력이 드러난 데는 바뀐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수년 전 빵셔틀을 조롱하던 시대에 학교 폭력의 피해자를 자처하며 도움을 호소하기란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향상한 인권 감수성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제 남은 과제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방안 마련에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는 일이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주가 돼선 안 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사회적 관심이 가해자에만 향하고 있는 양상이다. 언론은 연일 가해 선수들의 동향을 추적 보도한다. 그사이 사회적 관심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에 그치고 있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내 서열 문화에 있다. 가해자는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노린다. 그들을 대상으로 폭력과 폭언을 행사하고 빵셔틀의 지위를 부여한다. 학교 서열 문화는 계층 간 위계가 확고한 한국 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학벌, 출신지, 고용 형태, 주거 형태, 성별 등 한국 사회의 위계는 인도 카스트제를 방불케 할 만큼 세부적이다. 복잡한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어른들도 사회적 폭력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곤 한다.


 경직된 서열 사회에 익숙해진 어른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서열에 익숙해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 교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방식이 더 직접적이고 원초적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제 사회적 관심은 학교 폭력의 구조적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가해자 동향에 대한 단발적 보도와 일시적인 사회적 분노로는 학교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교내 서열 문화를 없애지 않는 한 어떤 대증요법에도 불구하고 학교 폭력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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