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sy Feb 17. 2021

[작문연습55] 석유

- 땅에서 석유를 시추하듯 데이터도 사람에서

 ‘피(blood)가 있으라’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영화 <데어 윌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는 캘리포니아 개척 시기 석유 시추 업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석유를 좇는 극한의 욕망을 빼면 껍데기만 남게 되는 남성은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석유인지 피인지 모를 것을 뒤집어쓴 채 주저앉는다. 영화는 석유를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 않는 인간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린다. 하지만 우리가 이토록 석유를 욕망할 수밖에 없는 건 석유가 산업 사회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석유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 시대엔 데이터가 석유의 위치를 점유할 것으로 예측한다. 석유의 지위가 위태로운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인류는 기후위기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 각국은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며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를 공언하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석유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ICT 기반 산업의 발흥이다. 이들 기업은 전통 제조업에 비해 석유 소비가 많지 않다. 대신 데이터를 활용해 기업 실적을 극대화한다. 지난해 미국 최대 석유 기업 엑슨모빌이 다우지수에서 퇴출된 건 산업 개편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땅에서 석유를 시추하듯 데이터도 사람에서 뽑아내야 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인기 SNS를 쓰기 위해 이용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지불한다. 구글은 이용자의 검색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과거 석유를 가장 잘 시추하는 기업의 가치가 높게 평가됐다면 앞으론 고객의 데이터를 가장 잘 축적하는 기업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거라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4차 산업 초입에 중국이 부상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5억이라는 막대한 인구 규모와 권위주의 정부의 조합은 데이터 생산에 최적의 환경이다. 인구가 적고 개인정보 보호의 신념이 강한 국가일수록 데이터 축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애플이 자사 운영체제의 개인정보 보안을 강화하겠다고 하자 페이스북이 반발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페이스북은 아이폰 내 페이스북 사용자의 검색 정보로 맞춤형 광고를 만들어 막대한 수익을 얻어왔다.

  

 축적된 데이터의 활용도는 맞춤형 광고에 그치지 않는다. 조합 방식에 따라 활용도는 무궁무진해진다. AI 개발과 자율주행차량의 완성도는 데이터가 좌우한다. 금융, 행정, 여행, 농업까지 데이터의 중요성은 점증할 예정이다. 전통 제조업에서 개별 기업이 석유 자원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데이터 쟁탈전도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인류 역사에서 자원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은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역사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이 데이터 시대에도 적용될지 지켜볼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작문연습54] 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