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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Feb 27. 2021

[작문연습62] 야경

- 정치혐오를 부추기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오늘날 국가의 시장 개입은 당연한 전제다.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의 시장 개입에 거부감을 갖곤 한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 없이 온존할 수 있는 시장이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가 오로지 국방과 치안만 담당하는 야경국가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 개입 없는 시장은 시장 참여자들의 권모술수로 왜곡된 채 극소수의 이득만을 위해 작동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시장 개입은 찬성 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정도의 문제다.


 그 ‘정도’는 시장 참여자들의 타협에 따라 결정된다.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하지만 타협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의 정치인들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공산주의 유령’이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21세기 한국에도 여전히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증오의 명분으로 들먹이는 이들이 남아 있다.


 하나의 이념에 경도된 정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도 야경국가도 지속가능성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현대 국가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숭상한다. 무슨 이념이든 잘 먹고 잘 사는 데 도움이 되면 된다. 정부 정책과 국가 운영의 방향을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빨갱이나 사회주의자 낙인은 소모적인 이념 논쟁으로 사회적 자원을 낭비한다. 여기서 합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의 재정 지출이 늘고 있다. 그러자 이념 논쟁에 다시 불이 붙는 양상이다. 정부의 재정 집행을 두고 논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정부 씀씀이가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 비판에 굳이 이념을 끌어오는 건 한국 정치의 오랜 관습이다. 문제는 이 같은 비판의 방식이 정책적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데 있다. 분단국가의 비애를 악용하는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일상에서 일반 시민이 분단 상황을 체감할 기회는 많지 않다. 북한의 간헐적 도발은 우리에게 일상이 됐고 사람들은 먹고살기에 바쁘다. 분단 상황을 일깨우는 건 언제나 정치권이다. 이념을 들먹이는 정치인들의 말이 낡고 낡아 해져갈 동안 사람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정치의 본연의 임무는 타협이다. 타협을 가로막는 이념 논쟁은 진즉 폐기처분 대상이었다. 폐기처분 대상과 가까이 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정치혐오를 부추기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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