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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Mar 04. 2021

[작문연습67] 대출

- 외면받은 고통은 눈덩이처럼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을 수 있다. 2008년 양적완화가 세상에 등장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었다. 미 정부는 양적완화를 동윈해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국채를 매입하고 기준 금리를 낮춰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우려했던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국가 부채는 증가했지만 가계 부채는 감소했다. 경기는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가계 빚이 줄어야 소비가 살아나고 경기가 살아난다는 강고한 합의가 생겨났다. 이후 각국의 재정정책은 가계 부채를 국가 부채로 이전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단, 우리는 예외였다. IMF 외환위기 당시 작은 정부를 압박하던 국제 사회가 이제 한국의 재정 여력은 충분하니 재정 지출을 늘리라고 권고할 정도다. 지난해 국내 재정건전성은 OECD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그사이 가계 부채는 1700조 원을 돌파, GDP 대비 100%를 넘겼다.


 이번 코로나 위기를 대처하며 국가 부채는 GDP 대비 50%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주 정부는 19조 5천억 원 규모의 4차 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15조는 국채 발행으로 충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원 대상은 저번보다 확대된 매출 10억 원 이하, 직원 5인 이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다. 정부의 코로나 방역 조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이다. 이들은 정부의 간헐적 지원 속에 지난 1년을 마른 수건 물 짜내듯 빚을 내 버텨야 했다.


 소상공인 외에도 노점상과 법인택시기사 지원 길도 열렸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재정 지원책인 셈이다.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국가 재정을 화수분처럼 쓰고 있다는 것이다. 향후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대비해 나라 곳간을 사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잇따른다. 그러나 지난해 OECD 국가 재정건전성 순위에서 한국은 4위를 기록했다. 전년도보다 4계단 상승했다. 국가 재정은 화수분처럼 사용된 적이 없었다. 한편 초고령화 사회를 우려하는 이들은 당장 내일을 걱정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고통은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재정건전성 수호도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특별한 상황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코로나 위기가 전시 상황에 버금가는 충격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종전의 방식만을 고수한다면, 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없다. 독일 정부는 막대한 재정 지출 규모에 대해 지금 쓰는 게 나중에 쓰는 것보다 재정을 아끼는 길이라고 답한다. 나중 가서 가래로 막지 않고, 지금 호미로 막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판단은 그간 우리가 선망해 마지않던 선진국들의 일치된 견해다. 영끌과 빚투가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가계 부채 증가의 원인을 미래를 설계하는 이들에서 찾을 때, 한편에선 빚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외면받은 고통은 눈덩이처럼 더 큰 사회적 부담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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