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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Mar 07. 2021

[작문연습68] 결혼

- 정상가족을 꾸릴 능력이 되냐는 물음

 흔히 결혼은 현실이라고 한다. 이상한 말이다. 미혼은 가상이란 소린가.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에 혼인 상대의 각종 스펙을 하나하나 따지는 일도 허용된다. 미래 배우자의 직업ㆍ소득ㆍ집안 배경까지 자세히 비교하고 분석해야 한다. 가상의 세계에선 속물처럼 보일 행동도 장려되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 속에서 연애할 사람과 결혼할 사람은 따로라는 관계론이 공유되기도 한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의 속뜻은 미래 배우자가 정상가족을 꾸릴 능력이 되냐는 물음이다. 정상가족은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구축해온 모범이 되는 가족상이다. 규격화된 삶의 양식에 일치하지 못하면 실패한 결혼 생활로 비치기도 한다. 문제는 그 규격에 맞는 삶을 지속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결혼을 당연시하던 시기엔 일단 결혼 이후에 규격을 준수하려 분투했다면, 결혼을 삶의 부차적 요소로 여기는 요즘 세대는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N포 세대의 우선 포기 순위에 결혼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혼인 건수는 해가 다르게 줄고 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정상가족 유지의 부담을 견디기 힘든 현실 때문이다. 시대는 변하는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공고하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결혼을 장려하면서도 결혼을 하고 싶다는 동성부부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 법적 부부로 인정된다.


 그 외의 어떤 결합도 정상 범주에 들지 못한다. 동거 문화에도 인색하긴 매한가지다. 서구 사회의 ‘시민결합’은 우리 사회에 발을 들일 수 없다. 다양한 형태의 시민 간 결합이 용인되지 않으니 출산율 감소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우리가 선망해 마지않던 유럽 선진국들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며 출산율을 높이는 동안 국내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편 비혼 출산도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정부는 혼인과 출산 장려 정책에 막대한 사회적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15년 동안 저출산 대책에 사용됐다는 200조 원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실패를 통해 배운다기엔 너무나 큰돈이다. 지금도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결혼과 출산 장려책이랍시고 단발성 금전 지원을 공약한다. 근본적인 대책은 실종된 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정책만 수두룩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상가족이 아니어도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상가족을 지탱하는 제도가 우선 변해야 한다. ‘결혼은 현실’이란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혼인과 출산 포기의 행렬은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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