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sy Mar 09. 2021

[작문연습71] 후보 단일화

- 지금도 새로운 희생양을 물색하느라 바쁠지 모르겠다

 우리의 정치는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선거철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상 검증은 희생양 찾기와 같다. 이념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인지 사상 검증은 정치인 지망생이라면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말 한마디 잘못해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히면, 이 땅에서 선출직 공무원은 포기해야 했다. 선거철 좋은 희생양이 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최근 이념 검증의 위력이 약해졌다. 기성 정치인의 빨갱이 공세에도 대중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 빠른 우리의 정치인들은 금세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냈다. 성소수자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 내재한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한 후보가 상대 후보에게 군대 내 동성애를 두고 찬반 여부를 물었다. 이는 사상 검증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호탄이었다. 이 같은 질문을 받은 후보자는 횡설수설 모호한 답변만 읊을 뿐이다. 성소수자에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자신에게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후 성소수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정쟁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들은 정치인의 찬반에 따라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 과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보 간 단일화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한 후보가 다른 후보에게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축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차별에 반대한다면서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얘기했다. 인적이 드문 시 외곽에서 축제를 진행해야 한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사상 검증을 피하고 싶어서인지 다른 후보들 사이에선 이슈도 되지 못했다.


 정치인들이 성소수자를 새로운 희생양으로 활용하는 동안 그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부차적인 요소가 됐다. 존재하지만 누군가 불편하다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됐다. 이들의 수가 보잘것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 목소리 높이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미국의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운동에 많은 한국인들이 지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블랙’을 ‘성소수자’로 대체하면, 한국에서도 유효한 구호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인권 감수성과 권리 의식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과거 이념 검증이 그러했듯 성소수자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행태도 곧 효력을 다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나 희생양을 찾아 헤매는 정치의 풍토는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도 새로운 희생양을 물색하느라 바쁠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작문연습70] 작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