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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Mar 14. 2021

[작문연습75] 옷

- 이 길이야말로 정말 가보지 않은 길이 될 것 같다

 “나는 보여진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사회의 특징을 이같이 설명한다. 현대 사회는 무한한 소비를 연료로 작동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계속해서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행에 뒤처지거나 싸구려 옷을 걸치면 사람의 가치마저 떨어져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더 새롭고 값비싼 옷을 구매하기 시작한다. 그게 나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겉모습에 대한 열망은 비단 현대 사회만의 특징은 아니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란 말이 오랜 시간 널리 쓰이고 있지 않나.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그러한 열망을 사회 시스템이 부추긴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외모가 자기 관리의 척도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를 타파해야 할 부조리로 여기는 최근 분위기에 역행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겉모습으로 한 사람의 내심까지 파악하는 행위는 아무렇지 않게 허용된다.


 대도시화된 삶이 이 같은 삶의 양식을 필요로 한다. 바쁜 현대인은 한 사람과 오랜 시간 교류하며 내심까지 살펴볼 여유가 없다. 첫인상이 끝인상이라는 말처럼 단번에 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겉모습만큼 유용한 판단 기준이 또 있을까. 홀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바우만의 명제를 부정하기 힘든 이유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들은 남들보다 더 바쁘다. 외국의 관찰자들은 한국인들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고 말한다. ‘보여짐’으로써 존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비판 섞인 평가이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우리의 특징이 한국의 고속성장을 가능케 한 동력이라는 사실은 파악하지 못한다. 최신 유행이라면 그게 옷이든 전자제품이든 학교든 지역이든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이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문제는 그 경쟁에 끝이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유행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선망의 대상은 높아져만 간다. 경쟁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사람들의 영혼마저 끌어와 유행을 좇게 만든다. 거대한 자본과 미디어는 그 최선봉에 있다. 명품 소비도 주식 투자도 부동산 매입도 남들 다 하는데 왜 너만 하지 않느냐며 계속해서 물어온다. 그러니 어쩌겠나. 너도나도 따라갈 수밖에.


 그럼에도 최근 바우만의 명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은 이미 우리 삶의 기본값이지만, 기본마저 버거운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다.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아도 한국 사회는 온존할 수 있을까. 이 길이야말로 정말 가보지 않은 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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