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 Dec 05. 2019

김애란 <호텔 니약 따>

오늘날 20대의 가난도 미담이 될 수 있는가

현대문학 스터디 때 서윤이
“교수님들 세대는 가난이 미담처럼 다뤄지는데 
우리한테는 비밀과 수치가 돼버린 것 같아”라고 
웅얼대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애란의 단편 <호텔 니약 따>는 '서로 같은 문법을 사용하고 있단 느낌에 안도'하는 대학 동기 서윤과 은지의 관계를 다룬다. 이 소설은 소통의 부재속에서 서로에게 쌓여가는 오해들로 인해 관계가 어긋나는 모습에 초점을 둔다. '말하자니 째째하고, 숨기자니 옹졸해지는 무엇'들에 대해서 우리는 꽤나 공감할 수 있다. 나의 '체면'을 위해 침묵해야 하는 순간들. 예를 들어 공금으로 기부를 하는 은지에게 혹, 기부에 옹졸한 사람처럼 보여질까봐, 섣불리 은지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한다. '소비'에 대해 은지보다 더 소극적인 서윤의 성격은 넉넉지 못했던 가정환경도 한 몫을 한다.

은지와 서윤의 반대되는 성향은 (소설속에서는) 그들이 지닌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낭비와 허영을 사랑하는 은지의 활력은 본디 중산층으로 누릴 수 있었던 소비력과 관련이 있을 것이며, 서윤의 신중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겁이 많은 성향은 근원적으로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행 전에는 그러한 차이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일종의 균형점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 그들의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 겹치는 순간,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서윤의 '가난'에 대한 부채감은 <호텔 니약 따>에서의 꿈에서도 발현된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보상금을 깨서 여행을 온 서윤은 죽어서까지 폐지를 줍는 할머니와 마주한다. 할머니의 가난이 저승에서도 이어지는 것 처럼, 서윤이 짊어지고 있는 가난도 그리 쉽게 벗어 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암시한다. 서윤은 아마 자존심 때문에라도 은지에게 꿈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폐지를 줍고 있지만 않았어도 서윤은 그리 서럽게 울지 않았을 것이고, 은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아이를 보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가난이 '비밀과 수치'가 되지 않는 20대가 있기는 할까. 오늘날의 가난은 확실히 이전 부모님 세대의 가난과는 다르다. 학자금 대출을 갚으면서 동시에 해외여행을 떠나고, 밥값을 아껴 때론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신다. 그래서 이 소설을 40-50대의 독자가 읽으면 과연 우리가 말하는 <가난>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부모님 세대의 가난이 겉으로 드러났다면, 오늘날의 가난은 안으로 곪는다. <가난>은 내가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취향의 폭을 제한한다. '소리에 겹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겹들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날 20대의 가난이 미담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