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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Dec 06. 2019

박민정 <세실, 주희>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주희는 아니, 따라가고 싶어, 대답했다. 따라가고 싶어. 그 말을 했던 자신을 생각해내자 비참해진 주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르디 그라, 참회의 화요일에 육박해오는 순간이었다. 행렬은 어느덧 소녀상 근처에 도착했고 세실은 동상의 의미를 몰랐다.


주희는 마르디 그라 축제에서 찍힌 동영상으로 인해 미국 여행에 대한 기억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주희는 그저 뉴올리언스 버번 스트리트에 우연하게 서 있었을 뿐이다. 주희에게 마르디 그라 축제는 트라피스트 수녀원에 대한 이미지가 전부였다. 축제의 의미를 왜곡하고 동영상을 찍어 포르노 사이트에 올린 사람이 분명 잘못된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주희는 왜 끊임없이 자책하는가.


주희는 J를 <동경>했다. 한국이 모국인 J가 마치 처음부터 그나라 사람인 양 타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과 거리낌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주희는 소외감을 느꼈다. 주희는 자신을 동양여자라고 웃어 넘기는 사람들이 시선이 못마땅했고, 그들의 문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주희가 J를 따라나선걸 자책하는 건 그들의 문화를 <동경>했고, 그들과 무람없이 어울리고 싶었던 자신의 <동경>이 무지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J가 주희에게 마르디 축제의 이면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히 일러주었다면 주희는 따라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지점에 대해 주희는 J를 원망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묘미는 주희가 J로 위치가 반전되는 마지막 장면이다.


세실은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를 <동경>해서 한국을 찾아왔다. 세실은 유노의 모국 뿐만 아니라 그의 고향까지 찾길 원한다.(그의 고향이 근현대사의 아픔이 남아 있는 광주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2005년 뉴올리언스 전체를 비극에 빠뜨린 허리케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주희처럼 세실은 광주가 가지고 있는 비극은 전혀 모른채 광주를 '동경'하는 연예인의 고향으로만 소비할 수밖에 없다.)


세실에게 우리나라 역사의 비극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녀의 할머니가 전쟁의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세실은 우연하게 일본의 행위를 규탄하는 집회의 한 가운데 서 있게 되었고, 세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주희에게 J는 친구였을까. J는 J일 뿐이다.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는 J는 친구가 아니다. 주희는 세실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자신의 모국어를 제공하고 일정한 사례를 받은 비지니스적인 관계에서, 대가 없는 '선물'을 주고 받는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둘의 관계는 변하게 된다.

타국의 문화를 동경하는 사람은 이방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서로가 대등한 위치에서 우리는 서로의 문화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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