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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Feb 09. 2023

<다음 소희> 반복되는 비극은 애도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주리, <Next Sohee>, 2023

아프면 울고 부당하면 화낼 줄 아는 소희가 죽었다.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성실하게 모든 걸 인내하던 착한 아이들은 조용히 죽어 갔다. 너무 오래전부터 지금도 계속해서 나쁘고 착하고 게으르고 또 성실한 소희들이 사라졌다. 가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사회가 바뀔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희가 받았던 그 모욕적인 전화들이 그저 ‘운’이 안 좋았다고 말할 순 없다. 맨몸으로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에게 운이 나빠서 차에 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인공 소희(김시은)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는 졸업을 앞둔 학생이다. 친구들은 취업을 위해 전공과 꿈에 상관없이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위험한 현장에 투입된다. 아이들이 쓰는 계약서는 자신이 아닌 회사를 보호한다. 학교는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윽박지른다. 어디로도 갈 수 없어진 아이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다. 몇 없는 선택지 중에 자퇴를 택한 친구 준희(정회린)의 삶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당찼던 소희는 왜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지우고 떠났을까. 소희는 동료들이 자신의 일을 묵인하라는 서류에 사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의 부조리함에 괴로워하며 자살을 택한 팀장의 죽음과 그 내용을 발설하지 말라는 회사의 동의서에 소희는 마지막으로 서명한다. 자신의 의지도 효력도 없는 사인이 회사의 ‘방어’를 위해 남용되었다. 소희는 그 무력감을 또다시 전가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소희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춤을 출 때 그토록 반짝이던 소희는 닭장 같은 콜센터에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까. 인센티브를 받으면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소희가 핸드폰에 남겼던 유일한 동영상은 자신이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했던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인센티브라는 텅 빈 유인책 없이도 수없이 넘어지고 실패하면서 도달하고 싶은 그 무언가.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살아 있는 소희가 그 자리에 있었다. 


영화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형사 유진(배두나)의 입을 빌려서 여기저기에 따진다. 제발 여기서 끝내지 말아 달라고 절박하게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반복되는 비극은 ‘애도’로 끝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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