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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Feb 07. 2023

<바빌론> 눈이 부시게 더럽고 외면하고 싶게 사랑스러운

데이미언 셔젤, <Babylon>,  2023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라라랜드>라고 말할 수 있다. 나에게 <라라랜드>는 빈틈없이 사랑스러운 영화이다. 감독이 그려낸 ‘꿈’과 ‘사랑’에 대한 달콤하고도 낭만적인 서사시는 메인 OST의 변주에 따라 아련하고도 아름답게 남아 있다. <라라랜드>가 ‘꿈’에 관한 전체관람가용 동화였다면 <바빌론>은 ‘꿈’에 관한 29금 잔혹동화이다. <바빌론>은 처음부터 아주 불쾌하고 매혹적으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우연한 기회로 할리우드에 입성하게 된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와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매니(디에고 칼바)는 자신이 선망해 왔던 자리로 계속해서 올라가게 되지만 결코 그 과정이 아름답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배제되고 떨어져 나가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커트(cut)’ 되고 만다. 만취한 채 비틀거리며 석양이 지는 배경 위로 가까스로 올라온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아무렇지 않게 사랑하는 감정을 연기해 낸다. 오로지 아름다운 장면만 화면에 담긴다. 더럽고 추악한 것들은 잘라내 버려진다. 화려한 가짜 죽음과 비극적인 진짜 죽음 사이에서 ‘죽음’은 무성 코미디처럼 다뤄진다.     



넬리 라로이는 우리가 배우를(더 정확하게 ‘여배우’를) 어떻게 욕망하는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넬리는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인물이지만 그녀가 가장 화려할 수 있었던 순간은 그녀의 목소리가 없었을 때였다. 무성영화에서 넬리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관객들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다. 신인인 넬리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욕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성영화로 넘어오며 그녀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마약과 도박에 찌든 그녀의 본모습이 매스컴을 타면서 넬리는 한없이 추락하고 만다. 다시 재기하기 위해 일상마저도 연기를 해야 하는 넬리는 고상한 척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파티장에서 매우 많은(!) 토사물을 뱉어낸다. 넬리의 당당한 모습은 눈이 부시게 더럽다. 



유성영화에서 자리 잡지 못한 건 잭도 마찬가지이다. 관객들은 잭의 ‘사랑해’라는 말에 이유도 없이 웃는다. 쏟아지는 비평에 화가 난 잭은 엘리노어(진 스마트)를 찾아간다. 


영화를 재생시키면 그 안에서 당신은 몇 번이고 살아나


잭은 엘리노어와 대화하며 무언가 위로를 받은 듯이 떠나지만 그 위로는 다시 그를 가장 고독하고 외롭게 만든다. 영화는 언제든지 자신이 가장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몇 번이고 재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또한 누군가에 의해 수없이 재생될 수 있다. 이유 없이 끝나 버린 자신의 시대를 더 이상 재생시킬 수 없었던 잭은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반복되었던 사랑도 재생하고 싶은 순간이 없이 끝나 버렸다. 


코끼리는 파티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자신의 몸집에 맞지 않는 차에 실려 파티장으로 향한다. 파티장으로 도달하기 위해선 오물도 온몸으로 맞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안에 살찌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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