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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an 30. 2023

<라인> 증오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엄마

위르실라 메이에, <The Line>, 2023

영화는 우아한 찬송가와 함께 물건들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돌이킬 수 없는 둘의 관계를 미리 보여주기라도 하듯 어떤 설명도 없이 누군가는 온몸을 던져가며 화를 내고 누군가는 겁에 질려 도망간다. 자식에게 폭력으로부터 쫓기는 엄마는 극 중에서 많이 봐왔지만 그 상대가 딸인 적은 드물었다. 폭력을 승계해 오던 아들들은 이 영화에 없다.

첫째 딸인 마르가레트는 폭력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는 7살짜리 어린아이 같다. 작은 말에도 불같이 화를 내며 목소리가 커지고 주먹이 나간다. 엄마인 크리스티나는 마르가레트가 태어남으로써 자신이 불행해졌다고 믿는 사람이다. 솔리스트로서 촉망받던 자신의 커리어가 임신으로 인해 깨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르가레트가 휘두르는 주먹에 맞아 크리스티나는 한쪽 귀의 청력마저 잃고 만다. 그녀의 자부심이었던 음악이 이제는 정말 영광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크리스티나는 딸인 마르가레트를 고소하고 그녀에게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진다. 이제 마르가레트는 100m 이내로 엄마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 마르가레트는 엄마가 자기를 두고 떠나가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애처롭게 그 주위를 맴돈다. 아직 어린 막내딸인 마리옹은 그 둘이 빨리 화해하길 바랐지만 100m 이내로 언니가 엄마에게 다가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마리옹은 아직 너무나도 어렸고 둘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마리옹은 언니가 이 일로 더 이상 엄마와 멀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파란색 페인트칠을 하며 언니를 선 밖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고운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 노래는 번번이 끊어지고 만다.

크리스티나와 마르가레트가 내뱉는 말은 자꾸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갈구한다. 사랑이 모자란 두 사람이 만난다면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둘은 사랑하지만 결코 ‘말’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마르가레트는 접근금지 기간동안 계속해서 엄마와 말을 하고 싶어 하지만 항상 외면당한다. 모든 이들이 축복의 말을 건네는 크리스마스 날에도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딸을 끌어 안지 못한다. 그렇게 다시 한번 외면받은 마르가레트는 남은 기간 동안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약속한 공연 당일,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마르가레트는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다. 그제야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자신을 봐달라고 갈구하던 모습이 아니라 인사와 함께 따뜻한 눈빛을 건넨다. 자신의 원죄를 모두 털어 내기라도 한 듯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다시 집에 돌아온 마르가레트는 크리스티나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영문도 모를 변화 속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처음 장면, 벽에 부딪혀 부서지던 물건 속에서 악보는 흩날리기만 할 뿐 찢기거나 훼손되지 않았다. 마르가레트와 크리스티나를 붙들고 있던 그 무엇은 결코 끊어 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사실과 음악으로 연결된 애증과 이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왜 가족은 서로를 끌어 안으려고 하는 걸까. 오래도록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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