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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Feb 25. 2023

<애프터썬> 나는 새롭게 떠오른 외로움을 봐요

샬롯 웰스, <Aftersun>, 2023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어떤 기억은 빛바랜 사진으로, 어떤 기억은 추억으로, 어떤 기억은 누군가의 상처로 내 유년 시절을 복원해 낸다. 이상하게도 초등학교 때 기억은 선생님과 친구들까지도 선명한데 중학교 때 기억은 텅 비어 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도 있는 것처럼 교실도 선생님도 추억하고 싶은 순간도 없다. 남아 있는 사진도 일기장도 거의 없어서 그 순간은 나라는 존재가 잠시 비워진 것만 같다. 그리고 그 공백 속에 남아 있는 건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안다.



영화 <애프터썬>은 중반부까지 싱그러운 여름날을 보내는 부녀의 따뜻한 여행기처럼 보인다. 11살 소피의 시선을 따라 집중하게 되는 것은 소피가 느끼는 새로운 감각들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되는 호기심 많은 소피의 눈망울을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 캘럼의 시선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후반부에 가서 캘럼이 (아마도) 죽었고 아버지의 나이가 된 소피가 캘럼을 다시 떠올리며 영상과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관객 역시 캘럼의 기이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게 된다. 자신의 딸을 바라봤던 따뜻한 눈빛과 어딘가 영원히 떠날 사람처럼 순간순간 공허했던 순간들을. 자신이 마흔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 ‘존재’ 자체였다는 사실을. 소피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호신술을 알려주었지만 캘럼은 본인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



영화는 많은 것들을 알려주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숨긴다기보다는 왜곡될 바에는 굳이 말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 캘럼의 외로움이 부모님에 관한 것인지, 이혼에 관한 것인지, 경제적인 상황에 관한 것인지 추측만 할 뿐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다만 소피에겐 모든 것들이 새롭고 벅차올랐던 순간에 캘럼은 계속해서 자신의 우울과 아프게 싸우고 있었음을 뒤늦게 발견하게 됐을 뿐이다. 그리고 캘럼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딸에게 결코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대부분의 순간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쓸쓸한 캘럼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엔딩은 모든 아름다움을 부채감으로 전환한다. 아버지는 소피의 꿈속으로 먹히듯 사라진다.



*<나는 새롭게 떠오른 외로움을 봐요>는 2017년에 발매된 새소년 <여름깃>에 실린 노래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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