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스캔들에 <영웅>이 설 만한 자리는 없다. 보도자료는 TV나 신문이 전부였던 시절에는 여기저기서 영웅이 쏟아져 나왔다. 학창 시절의 잘못은 젊은 날의 치기로 쉽게 용서가 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단순한 일탈로 넘기기에는 어려운 증거물들이 SNS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퍼진다. 판단은 여론이 주도하고 광고주는 여론의 줄다리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끔 그 영향력이 엉뚱한 사람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쉬가르 파라디의 영화 <어떤 영웅>은 결코 영웅이 될 수 없었던 평범한 재소자 라힘의 금화 주인 찾기에 관한 답답한 여정이다. 아쉬가르 파라디의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문제는 아주 간단해 보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채 문제로 바람(전 부인의 아버지)의 빚을 갚지 못한 라힘은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런데 그가 휴가를 받기 며칠 전 우연히 그의 여자친구가 금화가 든 가방을 줍게 된다. 그것으로 빚을 어느 정도 갚고 출소해보려고 하지만 여러 문제로 그 일이 불가능하게 되자 라힘은 금화 주인을 찾아주고자 한다.
라힘은 자기가 금화가 든 가방을 찾았다며 이것을 돌려주고자 한다고 말했을 때 자신에게 건네지는 시선을 의식한다. 교도소로 금화 주인이 전화를 하자 관리인들도 그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추켜세워준다. 그때 라힘을 고양시켰던건 출소에 대한 희망보다는 오랜만에 받아보는 환대였을 것이다. 방송국에서는 그의 선행을 취재하고 재단에서는 상장과 함께 그를 위한 모금까지 한다. 용서를 강요받는 바람은 이 모든 행위가 부당해 보인다.
라힘은 이 일로 출소도 하고 일자리도 제공받는가 싶었으나 당연히 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라힘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금화를 돌려받은 여자를 데리고 오라는 것이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금화를 가져간 여인은 진짜 금화의 주인이 맞는지도 알 수 없다. 라힘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여자를 찾으러 동네를 돌아다닌다. 아들은 라힘이 받은 상장이 든 액자를 옆구리 끼고 고달픈 표정으로 라힘을 따라다닌다. 액자는 상이라기보다 아들이 라힘의 죄를 대신 짊어진 것만 같아 보인다. 라힘은 결국 제일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만다. 여자친구를 금화 주인이라고 내세운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모든 일들이 파국의 형태로 끼워맞춰진다.
따져보면 라힘은 잘못한 것이 없다. 돈을 돌려주고자 했고 조금 어리석었을 뿐이다. 그가 재소자였다는 점이 그를 쉽게 영웅으로 만들었고 동시에 그의 선의를 모두 의심하게 만들었다. 재단은 라힘에게 모인 돈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라힘에게 가지 않는 돈은 사형을 앞둔 누군가의 남편을 살리는 데 쓰일 것이다. 라힘은 돈을 포기하고 만다.
증명되지 못하는 진실은 힘이 없다. 특별히 악의가 없었던 사람들의 찬양이 모여 그들이 보고 싶은 선량한 재소자를 만들어 냈다. 스스로 영웅이 되지는 못해도 영웅을 만들어 내기는 너무나 쉽고 또 무너뜨리기도 너무나 쉽다. 대중에게 쉽게 휩쓸리지 않을 판단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절망적으로 끝나진 않는다. 아들의 장애를 이용해 교도소의 이미지 회복을 꾀하는 교도관에게 라힘은 동영상을 지워달라고 말한다. 이제 라힘은 더 이상 명예를 실추해선 안 되는 대상을 분명하게 안다.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라도 자신이 진실한 사람이라고 줄곧 말하는 자기 아들에게 당당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당장은 교도소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서러울지라도 증명할 수 없었던 진실 속에서 아버지의 진심은 증명할 필요도 없이 남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