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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Mar 22. 2023

<이니셰린의 밴시> 친구의 절교가 절규가 되는

마틴 맥도나 <The Banshees of Inisherin>, 2023

“인생의 친구가 오늘 절교를 선언했다”


나이 든 중년 남성의 절교 선언이 영화 소재가 된다니. 예고편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실존에 관한 이야기이며 다시 돌아온 다정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일랜드의 작은 섬마을 ‘이니셰린’은 특별한 일이랄 건 없는 조용한 동네이다. 여기에 음악에 조예가 깊은 ‘콜름(브렌단 글리슨)’이란 한 남자가 있다. 콜름은 자신의 생에 허무함을 느끼며 남은 생을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채우려고 한다. 그는 이제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는 대신 자신이 죽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작곡을 하고자 한다.


‘파우릭(콜린 파렐)’은 이니셰린에서 가장 인정 많고 다정한 남자이다. 똑똑하진 못해도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줄 알며 당나귀 똥을 보면서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콜름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절교를 선언하고 만다. 자신을 귀찮게 하면 자기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하면서 말이다.



파우릭의 동생 시오반은 책을 좋아하고 사색을 즐기며 자신이 느끼는 허무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똑똑한 여성이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추파를 던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진절머리가 나 있지만 다정한 오빠 파우릭에게만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외롭다고 느껴본 적 있어?”


하지만 파우릭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두 사람(콜름과 시오반)이 느끼는 삶에 대한 허무와 근본적인 외로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파우릭은 콜름이 단순히 우울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진심을 알게 된다면 다시 예전의 콜름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존에 대해 한번 의문을 품기 시작한 이상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파우릭에게 콜름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다정했던 콜름일 뿐이다. 생긴 것도 그대로이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다.



콜름은 자신의 협박대로 자기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의 대문에 던져 버린다. 콜름은 이제 예전의 콜름과 다르다. 자신의 남은 삶을 자신의 선언대로 살고자 하는 콜름은 신체적인 자해마저 서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도 파우릭에게 콜름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한다. 졸지에 착하기만 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린 파우릭은 자신이 가진 다정함을 의심한다.


자신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삶을 바꾸고자 한 콜름과는 달리 시오반은 이니셰린을 떠난다. 애꿎은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내전으로 폭탄이 터지고 총성이 들리던 그곳으로 간다. 시오반은 이제 보이지 않던 두려움을 똑바로 마주하며 살 것이다.



콜름이 던지고 간 손가락을 먹고 자신이 아끼던 당나귀마저 죽어버리자 파우릭은 거대한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 같은 파우릭은 콜름의 집을 불태워버릴 것을 선언한다. 시간까지 알려준다. 그가 키우는 개가 다치지 않도록 자신의 마차에 싣기까지 한다. 파우릭은 끝까지 다정하다.


가장 돌이킬 수 없는 재앙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둘의 관계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파우릭은 콜름이 죽었어야 이 싸움이 끝이 난다고 말하지만 파우릭이 죽지 않고 살아 있어 관객도 파우릭도 안도했을 것이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콜름의 진심 어린 말에 파우릭은 아마 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이 이미 끝났음을 알 것이다.



이 영화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실존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며 다정함이 전부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니셰린의 <밴시>처럼 이 모든 이야기에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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