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 <도망가자>
어떤 일을 겪고 나면 늘 듣던 노래도 다시 온다. 다시 아프게 위로받는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는 어떤 사랑 노래보다 애틋하고 절절하다. 손을 맞잡고 눈 맞추며 도망가자고 말하는 이의 목소리는 단단하다. “괜찮아?”라고 먼저 묻지 않고 괜찮다고, 도망가자고 말하는 이의 뜨겁고 선명한 결단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말하는 것조차 버거울 때 나를 건져 올리는 손에 망설임이 있다면 그 손을 뿌리치기 쉽다. 하지만 영원히 갇혀버릴 것 같은 지옥과 같은 공간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나를 가두었던 창살은 이제 빛이 새어 들어오는 틈이 된다. 숨을 쉬게 만들어 준다.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나를 붙잡아줄 누군가가 있다면 도망친 곳이 낙원이 아니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애초부터 낙원은 어디에도 없었고 나를 살리는 건 때때로 무심한 다정함이었다. ‘힘내’라는 말도 숙제처럼 느껴질 때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끌어당겨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누군가의 조용한 격려는 나의 지옥 같던 공간을 뜨문뜨문 밝힌다.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 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어디든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다. 영원히 도망치는 건 이제 다른 지옥이 된다. 언젠가는 돌아와야 한다. 씩씩하게. 돌아온 곳에서 다시 자신을 보살피자. 나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나를 버려두지 말자. 따뜻했던 하루를 기억하고 또 하루를 살자. 부디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말자. 나와 당신의 미래를 평범한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