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습관 005_2019.12.04
나는 자기소개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모두가 처음 만난 어색한 자리, 사회자가 그 분위기를 깨고자 “용기내서 먼저 자기소개 하실 분?”이라고 묻는다. 나는 항상 못들은 척 눈길을 피한다. 그 짧은 시간에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한다는 것은 얼마나 막막한 일인가. 그런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주위를 환기시키며 말문을 트는 사람들은 볼 때마다 부럽다. 열심히 듣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지만 말하는 건 좀처럼 자신이 없다.
독서모임을 2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자기소개를 할 때 제일 긴장한다. 나는 사실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어쩐지 빈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이름과 내 나이와 내가 사는 곳과 내 직업은 나를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어요’라는 말을 내뱉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재치 있게 이런 저런 말을 덧붙여 할 자신도 없어서 나는 항상 반복하는 말인데도 내 이름을 말하면서도 그렇게 민망스러워했다.
내 이름은 한자로 이루어진 고유명사일 뿐이다. 한자의 뜻은 그렇게 크길 바라는 소망이지 나를 표현할 순 없다. 하지만 나를 부르기 위해 소개할 때 꼭 필요하다. 사는 곳은 어떠한가. 내가 사는 곳은 특색이 없는 곳이다. 일인 가구가 제일 많다는 곳, 그래서 배달 주문이 유독 많다는 곳. 그런 특색은 우울할 뿐이다. 그렇다면 내 직업은? 직업은 그나마 좀 더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저마다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돈을 벌려고 택한 직업이기에 자신에 대한 편견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독서모임에서 자기소개 양식을 조금 바꿨다. 이름을 말하고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나이나 직업 등을 덧붙이는 건 상관없다. 대신 당신이 지금 가장 관심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독서 장르는 무엇인지, 최근에 재밌게 본 책이나 영화가 있는지를 묻는다. 관심사라는 질문은 포괄적이지만 그래서 또 예상치 못한 대답이 튀어나올 수 있어 흥미롭다. 취미나 취향, 혹은 고민이라도. 어딘가 조금이나마 가까워 졌다는 느낌이 든다.
자기소개를 바꾼 첫날. 나는 요즘 최고 관심사는 ‘피아노’와 ‘글쓰기’라고 말했다.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고 지금 어느 정도 수준인지, 글도 여러 형태로 꾸준히 쓰는 게 목표라고 했다.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조금 흐뭇했다. 다음번이 되면 ‘피아노’는 내 관심사에서 조금 멀어질 것이다. 아마 ‘취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용기내서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 나의 지금 관심사는 ‘자기소개를 멋있게 하는 법’이다.
2019.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