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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an 14. 2020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진실과 진심 그 사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2019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전반적으로 ‘진실’과 ‘관계’에 관해 느슨한 관점을 취한다. 전작 <어느 가족>에서 보여주었듯이 ‘가족(관계)’의 형태는 감독에게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진실’도 마찬가지이다.


“기억은 믿을 게 못 돼.”


이번에는 진짜 가족이다. 감독의 전작들이 '남'이었던 사람이 '가족'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주로 그렸다면, 이번에는 '가족'이지만 또 '남'같은 모녀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파비안느는 전성기를 지난 오래된 배우이다. 딸 뤼미르에게는 파비안느와 행복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파비안느의 회고록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은 뤼미르는 축하가 아니라 트집을 잡으려고 온 것처럼 말과 행동에 가시가 있다. 파비안느는 배우답게 뤼미르가 내뱉는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한다.


파비안느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무례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과거에 화려했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주변인들을 깎아내린다. 그녀를 떠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지도 않고 혼자 외롭게 화려함을 연기한다.


뤼미르는 그런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도 못한다. 틈이 나는 대로 파비안느를 몰아세우지만 또 그녀를 살뜰히 돌본다. 그 사이에 낯 뜨거운 화해의 과정이 없다. 어떻게 해야 서로를 상처 줄 수 있는지 가장 잘 알지만 또 회복도 그만큼 빠르다.


뤼미르는 파비안느 곁에서 조금씩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된다. 자신보다 사라를 더 따르는 뤼미르에게 섭섭함을 느꼈다는 것도, 파비안느가 뤼미르의 연극을 보러 갔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된다. 마음을 드러내는 데에 서툴렀던 파비안느는 대본이 아니고선 진심을 말하기 힘들어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파비안느의 진심은 뤼미르를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스틸컷


이 영화는 그렇다고 해서 ‘모성’에 대한 영화는 아니다. ‘가족’ 영화도 아니다. 배우 파비안느를 대변하는 영화이며 그녀가 배우로서 요구받는 진심과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파비안느는 사라 대신 따낸 배역에 관한 스캔들을 해명하지 않는다. 그녀가 만족할 만큼 그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해명을 요구한다.


파비안느는 알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는다는 것을. 그래서 파비안느는 회고록에서 자신이 담고 싶은 것만 담는다. 자신에게 애정이 있는 뤼미르만이 그녀에게 이유 있는 진실을 따진다.


파비안느는 마지막으로 맡은 배역에서 마농을 통해 자신을 본다. 딸이 되어서 자신에게 무책임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본다. 좀처럼 배역에 집중하지 못하던 그녀가 진심을 전하고서야 그 감정에 비로소 몰입한다. 뤼미르와의 과거를 돌릴 순 없지만 파비안느는 그 장면을 다시 찍고자 한다. 그녀는 엄마가 아닌 배우로서 완벽해진다.


뤼미르는 아마 그녀를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조각나고 잃어버린 기억들에 빚진 채 받지 못한 사랑을 자신의 딸 샤를로트에게 전하며 유년의 시간을 보듬을 것이다. 감독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집중한다. 플래시백은 한 번도 쓰이지 않는다. 과거는 누군가의 기억일 뿐이니까.


진실과 진심.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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