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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an 21. 202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누군가를 그린다는 것

셀린 시아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2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 미술관에서 벽면을 가득 채운 명화에 압도되는 기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려 나가는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의 섬세한 터치는 두 사람의 숨결이 맞부딪치는 장면만큼이나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서로를 향한 시선으로 서사를 쌓아나가는 이 영화는 흰 캔버스를 가르는 스케치에 색을 겹겹이 뭉개어 나가며 영화를 다채롭고 풍부하게 이끌어 나간다.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는 결혼을 앞둔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초상화를 의뢰받은 화가이다.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마리안느는 바다를 건너온다. 중심을 잡기도 어려운 작은 배안에서 마리안느는 캔버스를 바다에 빠뜨리고 말지만 그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몸이 홀딱 젖은 마리안느는 덜덜 떨면서 짐을 짊어지고 숲을 헤쳐 의뢰인의 집을 찾아간다. 여기서 마리안느에게 ‘물’은 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리안느는 언제든 물에 뛰어들 수 있고 언제든 물을 건너갈 수 있다.


엘로이즈의 초상화는 그녀가 결혼할 집으로 먼저 배달이 될 예정이다. 그 집에서 초상화가 마음에 들면 엘로이즈는 본 적도 없는 부잣집의 누군가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엘로이즈는 화가들에게 포즈를 취해주지 않으며 소극적으로 저항한다. 마리안느는 산책 친구라는 구실로 엘로이즈에게 접근해서 그녀의 초상화를 몰래 그리게 된다. 엘로이즈를 그리기 위해 그녀의 구석구석을 훑는 카메라의 앵글은 묘하게 짝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을 닮아 있다. 그래서 마리안느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돌아보는 엘로이즈의 눈길은 마치 내가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마냥 심장이 떨린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감정을 쌓아가는 동안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완성한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어머니에게 이 초상화를 엘로이즈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엘로이즈는 그 이전에 한 번도 마리안느 방의 수상한 장막을 걷어 보려고 한 적이 없다. 바닷가에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에게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왔는지 털어놓는다. 묘한 배신감 느낀 엘로이즈는 바다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한다. 수영을 못하면 위험하다는 마리안느의 말에 엘로이즈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고 말하며 그녀의 옷을 벗어던져 버리고 물에 뛰어든다. 엘로이즈를 억압하던 무언가에서 벗어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처음 뛰어드는 장면이다.


물에 뛰어들고 나온 엘로이즈는 이전보다 더 당당해 보인다. 마리안느는 마치 연서라도 전달하듯 다소 초조하게 그녀의 초상화를 내보인다. 하지만 엘로이즈는 이건 내가 아니라고 말한다. 당신의 눈에 내가 이렇게 보였냐는 말에 마리안느는 자존심이 상한다. 귀족의 눈에 들기 위해 초상화 속 상기된 두 뺨은 엘로이즈와 어울리지 않는다. 마리안느는 스스로 그림을 망가뜨리고 부인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한다.


부인이 집을 떠나고 저택에 처음으로 자유가 깃든다. 그 자유의 시간 동안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완성해야 한다. 엘로이즈는 포즈를 취하고 마리안느는 그녀를 그린다. 엘로이즈의 표정은 기품 있고 강직하다. 부분이 아니라 온전히 그녀를 그리게 된 마리안느는 거침없이 그녀를 완성해 나간다.


이 저택에는 빠질 수 없는 인물이 하나 더 있다. 하녀 소피이다. 엘로이즈는 귀족이지만 수녀원에서 느꼈던 ‘평등’을 그리워한다. 셋만 남은 집에서 그들은 자유롭다. 같이 게임을 하고 같이 밥을 먹고(때로 엘로이즈가 요리를 하며) 오르페우스 신화 속 장면을 함께 이야기한다. 소피의 낙태 역시 그들에게 중요한 일이다. 그들은 남자를 찾거나 탓하지 않는다. 소피의 낙태를 위한 장면에서 감정이 과잉되지 않는다. 눈을 돌리는 마리안느에게 엘로이즈는 똑바로 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장면을 그림으로 남겨 놓는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사랑은 점점 깊어진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는다. 그들의 성별이 같다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자’는 성별이 아닌 ‘계급’이고 그 계급은 극복할 수 없다. 둘은 이별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물로 뛰어들 수 있지만 그들 스스로 바다를 건널 수 없다.


여기서 오르페우스 신화는 그들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피는 오르페우스가 마지막에 뒤돌아 본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마리안느는 뒤돌아 볼 수밖에 없는 그 마음과 상황을 이해한다. 떠나던 아내도 오르페우스를 원망하지 않을 거라고.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환영을 두 번 마주하고 그녀와 정말 이별하게 되었을 때 마지막 인사를 차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계단을 뛰어내려 간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불러 세운다. 돌아서 자신을 봐달라고. 여리기만 해 보였던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시선을 당당하게 요구할 만큼 강해졌다.


그렇다면 여기서 영화의 제목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모닥불을 두고 여자들이 빙 둘러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감동적이면서도 어딘가 섬뜩하다. 마리안느는 묻는다. 자신을 사랑하게 된 때가 그때냐고. 엘로이즈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마리안느에게 그날은 분명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 계속 간직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엘로이즈는 치맛자락에 불이 붙어 타오른다. 나는 그 장면이 마치 그녀가 화형 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억압과 굴레를 ‘마녀’라는 오명으로 덮어 씌워 불태워 버리는 의식처럼. 하지만 엘로이즈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마리안느를 똑바로 바라본다.


이전에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불에 태워버린 적이 있다. 얼굴이 없는 초상화를 아궁이에 집어던졌을 때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엘로이즈의 허상은 불태워져 없어졌지만 진짜 엘로이즈는 불타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날 다시 태어났다. ‘사랑’에 대한 말을 나누며 그들은 타오르는 뜨거운 마음을 애써 감춘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이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고, 대담하면서도 섬세하다. 영화의 결말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망적이지도 않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서로를 여전히 그리워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움켜쥘 수 있는 행복을 찾아 나선다. 엘로이즈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들으며 전율하고 마리안느는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다. 마리안느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녀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아, 오르페우스의 신화의 저주는 이렇게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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