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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Feb 10. 2020

<조조래빗> 웃음은 가볍지 않고 여운은 오래 남는다

타이카 와이티티 <조조래빗> 2019

로베르토 베니니의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9)와 마크 허만 감독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 그리고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조조래빗』(2019)까지. 이 영화의 공통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배경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것, 갈등의 양상이 유대인 학살로 비롯된 다는 것, 이념에서 자유로운 아이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조조래빗』이 특이한 지점은 이 영화 장르가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도 분명히 희극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그 경계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극명하게 나뉜다. 『인생은 아름다워』 후반부에서는 ‘귀도’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그들에게 드리워진 비극이 어디로 갈지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조래빗』을 보기 전에 그 웃음이 가벼울까 봐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리듬으로 영화를 무리 없이 끌고 나간 다는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보여주는 유쾌한 리듬과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주제 의식이 맞물려 태어난 게 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렬한 나치 찬양자인 10살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가 집에 몰래 숨어 살던 유대인 ‘엘사(토마신 맥켄지)’를 만나며 겪게 되는 내면적 갈등은 시종일관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까지도 ‘상상’이라는 장치를 동원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살린다. 특히 조조의 엄마 로지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은 이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며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로지는 나치의 감시를 피해 유대인을 몰래 도우면서도 나치를 찬양하는 조조를 비난하지 않는다. 전쟁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고 무엇이 옳은 지 조조에게 설명해주지만 조조를 설득하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부재한 10살짜리 어린아이가 욕망하는 소속감을 이해하며 더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한다.


<조조래빗> 스틸컷


자신의 신발끈을 묶지 못하는 조조가 끈이 풀려버린 엄마의 신발을 감싸 안으며 우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 울 수밖에 없다. 뱃속에 나비가 들어갔단 사실도 알려주기 전에 나비는 조조를 현실로 이끈다. 로지를 그렇게 만든 건 유대인이 아니라 나치이다. 하지만 조조의 분노는 엘사로 향하지만 그 칼끝은 상처만 겨우 낸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폭탄을 손에 쥐어 주며 미군과 자폭하라고 시킨다.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전장으로 뛰어든다. 여기저기 총성이 빗발치고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군인이 되기를 동경했던 조조는 그 끔찍한 광경에 얼이 빠져 뒷걸음친다. 자신이 동경하던 히틀러는 이미 죽었고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군인들은 싸워야만 한다.


결국 전쟁은 독일의 패배로 끝이 나고 조조는 이제 엘사가 더 이상 자신의 집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진 걸 깨닫게 된다. 조조는 엘사에게 우리가 이겼다고 거짓말을 한다. 어린아이다운 발상이지만 동등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사랑은 시작할 수 없다. 조조는 용기를 내 엘사를 문밖으로 데려나간다. 그리고 엘사의 신발끈을 단단하게 묶어준다.


영화는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지루할 틈(그리고 슬퍼할 틈)도 없이 결말로 다다른다. 하일 히틀러를 연신 외쳐대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마냥 웃을 수가 없다. 각본, 연기, 연출 모두 뛰어난 영화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관에서 상영관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 상영되고 있는 『사마에게』에 어쩔 수 없는 부채감이 생긴 다는 것. 그것 이외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후로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이다.


웃음은 가볍지 않고 여운은 오래 남는다.          

          


*<조조 래빗>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더불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같은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에 올랐습니다. 다음 메인에 함께 리뷰가 올라가게 되어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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