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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Feb 28. 2020

아름다운 기억이 지금의 나를 슬프게 만든다면

그레타 거윅 <작은 아씨들> 2019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은 캐스팅부터 기대감을 키웠던 영화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용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미 알고 있고, 이 영화의 매력은 순전히 배우 몫일 거라는 섣부른 판단 때문이었다. 이미 준비된 매력적인 캐릭터에 배우들과 감독은 숟가락만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평타 이상은 칠 거라는 기대를 안고 영화관에 갔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 유년 시절을 교차해 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슬픈 장면이 아니라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매들이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드는 행복한 장면이었고, 베스(엘리자 스캔런)의 죽음이 드리우기도 전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정작 슬픈 장면은 무뎌지고 행복한 장면에서는 눈물을 자주 쏟아 낸다.


순수한 질투와 시기가 남아 있을 시절의 다툼은 거짓말같이 금세 아물곤 한다. 조(시얼샤 로넌)는 강직하면서도 감정적이다. 여자로서 사회적인 한계를 분명히 알고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안다. 하지만 조의 성정은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다. 사랑을 선택한 메그(엠마 왓슨) 역시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삶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자신이 욕망하는 걸 분명하게 들여다볼 줄 알았던 에이미(플로렌스 퓨) 역시 자신이 역시 욕망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채 버티고 있다.


<작은 아씨들> 스틸컷


그들이 가장 행복한 시기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그들의 유년시절을 고를 것만 같은데 그 유년시절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그래서 네 자매의 웃음 소리가 자꾸 마음 한쪽을 아리게 만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끝도 없이 시시해지는 건가 되묻게 되었다. 억누르기에 고결했던 성정도 굽히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너무나 잔혹하지 않은 가 생각했다. 네 자매중에 가장 여리고 착했던 베스는 어른이 되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베스의 죽음 뒤에 영화의 분위기는 조금 바뀐다. 더 이상 어린 시절을 회상하지 않고 현재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에이미는 귀족의 청혼을 거절하고 다시 자신이 욕망했던 것(로리)을 되찾는다. 조는 로리와 다시 만나길 소망하지만 그것은 외로운 마음에 가려진 거짓된 욕망이다. 조는 다시 자신의 진짜 욕망을 마주하고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타협하지 않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밤을 새워가며 완성시킨다.


<작은 아씨들> 스틸컷


여기서부터 영화는 다시 말한다. 유년 시절은 끝나버렸지만 아직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남은 자매들은 조에게 생긴 작은 이벤트(프리드리히의 등장)에 조의 등을 떠밀며 그를 붙잡으라고 말한다. 마치 조가 사랑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가 빗속으로 뛰어들어 붙잡으려고 한 것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다. 그들이 다시 되찾은 것은 자매들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연대와 서로에 대한 이해이다.


2020년의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에 크게 빚지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담았다. 네 자매에 자신을 투영시키며 나의 유년을 돌아본다. 아름다운 기억이 지금의 나를 슬프게 만들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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