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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Mar 05. 2020

<엠마>가 <작은 아씨들>이 될 수 없는 이유

어텀 드 와일드 <엠마> 2020

어텀 드 와일드 감독의 <엠마>는 눈이 즐거운 영화이다. 장면마다 바뀌는 엠마(안야 테일러 조이)의 의상은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더욱 부각시키고,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목가적인 풍경과 인테리어와 소품에 공을 들인 티가 나는 배경은 코로나로 건조해진 우리의 삶을 환기시켜 줄만큼 화려하다. 그녀가 누리는 향략적인 일상 속에서 ‘가난’과 ‘불행’은 냄새조차 맡기 힘들다.


사랑스러운 주인공 엠마의 관심사는 ‘중매’이다. 엠마는 고아인 헤리엇(미아 고스)에게 근사한 짝을 만들어 주기 위해 호시탐탐 괜찮은 남자들을 물색한다. 엠마에게 ‘중매’란 유흥이며 ‘결혼’으로 누군가의 삶을 자신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지(자니 플린)는 그런 엠마의 철없는 낙관을 못마땅해한다. 여기서 엠마가 왜 ‘중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엠마에게 그런 서사를 주지 않는다면 엠마를 더욱더 철없는 귀족 아가씨로 만들 법도 한데 엠마는 영악하지도 않고 그다지 영리하지도 않아 보인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는 많은데 중심을 잡고 끌고 갈만한 사건이나 갈등 구조가 없다. 엠마가 자신을 돌아보며 각성하게 되는 계기 역시 단순한 말실수였다는 점도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조지와 엠마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도 좀 더 극적으로 그려낼 필요가 있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전하려는 메시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산만하게 전개된다. 겹겹이 싸인 화려한 포장지를 뜯어 내고 나면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엠마> 스틸컷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작은 아씨들>은 ‘결혼’과 ‘사랑’이라는 소재를 영리하게 다뤘다. 주인공 ‘조’는 감정에 곧잘 휘둘리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주체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용기 있게 마음을 전달할 줄 아는 ‘조’라는 캐릭터는 고전에 머물러 있지 않다. 하지만 엠마는 현대에서 해석한 예쁘장한 포장지만 입고 있을 뿐 캐릭터는 발전하지 못했다. 여성으로서의 의식은 물론 계급적인 의식조차 타파하지 못했다. 헤리엇은 마지막까지 엠마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배우자를 선택한다. 중간과정이야 스토리상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마지막으로 미스터 웨스턴(루퍼트 그레이브즈)을 선택할 때만이라도 헤리엇이 스스로 나서야 했다.


조지의 고백을 받고 코피를 흘리는 장면은 비로소 사랑에 눈 떴다는 처녀성을 상징하는가 싶어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작은 아씨들>에서 편집장은 엔딩에서 소설 속 여주인공이 결혼하는 장면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그런 엔딩을 원하고 그래야 잘 팔린다고. 하지만 여자에게 결혼이 해피엔딩인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엠마>는 고루한 시선을 그대로 답습한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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