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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Mar 09. 2020

<찬실이는 복도 많지> 꿈을 꾸는 자의 소탈한 위로

김초희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꿈을 말하는 세상이 지겹다. 요즘엔 조금 더 나아가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다독여준다.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면 된다고 꿈 없는 이들을 위로하는 책이나 강연도 인기가 많다.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도 없이 목표만 좇으며 살아온 현대인에게 꿈이란 말은 너무나도 막연하다. 꿈을 이루기는커녕 꿈을 찾기도 힘들다.


김영하 작가는 예전 힐링캠프(SBS)에서 성공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했다.



“지금은 성공하기 어렵다. 여기 많은 사람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거다. 어떤 회사 사장님이 직원을 모아놓고 훈계를 했다고 했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니 자기 집 차고에서 창업을 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직원들이 집이 없다, 차고가 없다고 대답했다더라. 위에서는 안주한다고 하지만 안주 자체가 사치인 시대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것도 사치다. 해야 하는 일을 하기도 바쁜데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성공하기는 정말 어렵다.”


자신은 낭만을 즐겨도 되는 시절에 태어났다고 말하는 김영하의 답변은 겸손하다. 하지만 그걸 듣고 있는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숨이 턱 막힌다. 하라고 등을 두들겨 줘도 새로운 걸 시도해보기 겁나는 시대에 성공하기 어렵다니. 우리는 너무나 현실적인 말에도 거부반응을 보인다. 수많은 찬실이들은 그럼 어떻게 하라고.    

꿈을 좇는 이들을 위로하는 영화는 많다. 그리고 그런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 역시 대부분 뻔하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럼 무얼 말하는 가? 복 많은 찬실이가 성공하는 내용? 아니다. 찬실은 영화 내내 한 번도 대박을 꿈꾸지 않는다. 찬실의 질문은 소박하다.


“저... 영화 계속해도 될까요?”


PD라고 하면 대단해 보이지만 대한민국에 PD라는 직업은 결코 멋있지 않다. 방송사든 영화사든 다들 피 말리게 일하며 대접받는 이들은 극소수이다. 할머니(윤여정)는 찬실(강말금)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찬실은 이것저것 다하는 직업이라고 대충 말한다. 어떤 일을 했길래 자기가 뭐하는지도 모르냐는 할머니에 타박에 찬실은 속이 타게 웃는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만 해도 편집 일을 하면서 마케팅 회의에도 들어가고 개발 테스트도 참여하고 거리에서 전단지도 돌렸다.


그런데 찬실은 그 직업마저 잃어버렸다. 감독 한 명만 바라보고 자신의 청춘을 받쳤건만 “누가 그러랬어?”라는 말만 돌아온다. 찬실은 친한 동생 배우 소피(윤승아)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한다. 지지리도 복이 없어 보이는 찬실이지만 사실 영 복이 없지만은 않다. 사실 찬실의 고민은 누군가 보기에 배부른 고민이다. 여자 나이 마흔은 현실적으로 책임져야 할 게 많은 나이이다. 그만큼 고민은 복잡해지고 많은 변수들이 끼어든다. 하지만 찬실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해나가도 될지‘만’ 고민한다. PD 자리에 잘리긴 했지만 당장 돈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고, 가사도우미 일자리도 쉽게 구했다. 같이 일하던 스텝들은 이사를 도와주고 집까지 찾아 올만큼 의리가 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줄 수 있는 숨 막히는 부담감이 찬실에겐 없다. 그런 부분에서 찬실의 고민은 맑고 심리적으로 조금 멀어진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소피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연애나 하라고 찬실을 부추긴다. 찬실은 미래에 대한 고민은 잠시 멈추고 소피의 불어 선생님인 영(배유람)에게 호감을 보인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다섯 살 차이가 뭐가 대수랴. 찬실은 김칫국을 드링킹하고 도시락까지 싸간다. 도시락이면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만 같은데 영은 그런 줄 몰랐다고 발을 살짝 뺀다. 찬실은 좌절하긴 하지만 찬실이 정말 원했던 게 연애가 아니었던 만큼 찬실은 실연의 슬픔에서 금방 빠져나온다.


찬실을 자꾸만 붙잡는 건 ‘영(혹은 령)’이 아니라 ‘영화’이다. 현실을 운운하는 영화사 대표에게 뼈아픈 말을 들었던 찬실은 이제 시나리오를 쓴다. 감독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일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소피는 찬실의 시나리오를 보며 지루하다고 말하지만 찬실은 일상에서 작고 소중한 것들을 건져 올리는 영화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여성’은 이제 연애와 결혼이라는 문법을 쉽게 따르지 않는다. 여자에게 연애는 알랑한 도피이고 이제 남자라는 도구로 성장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는 살 수 없다. 하지만 꿈조차 꾸지 못하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성공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필요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할머니는 이루고 싶은 게 없지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간다. 그 하루하루가 모여 할머니는 받침이 엉망인 시를 써낸다. 찬실이는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진 시를 읽고 운다. 할머니의 세월을 읽고 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솔직히 말해 조금은 지루하고 투박한 영화이다. 영화관에서 누군가 코 고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찬실이를 따라가다 보면 박수를 쳐주고 싶은 순간이 온다. 영화가 전하는 소탈한 위로가 터널을 지나 눈부시게 눈밭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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