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017. 코로나 19 - 혐오는 분리될 수 있는가
마음이 좀 더 예민해져야 할 때
“요즘 신천지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아뇨, 뭐라고 하는데요?”
“병신천지.”
여기저기 웃음이 터진다.
“우리나라 사람들 말 참 잘 만들어.”
회사니까 나도 따라 웃는다.
“그렇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같이 웃지 않으면 신천지로 오해받을까 봐 나도 말을 보탠다. 10년 전쯤이었다면 나는 아마 같이 웃어넘겼을 것이다. 더 수위 높고 센스 있는 말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하지만 두 집단을 향한 명백한 혐오 표현에 입이 쓰다. ‘병신’이라는 말은 이제 유희로 쓰여선 안 되는 단어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일상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방한용으로도 잘 쓰지 않던 마스크를 쓰는 게 일상이 되고 공공 시설물을 이용할 때 최대한 접촉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매일 울리는 재난 문자에 익숙해지고 확진자의 동선을 날씨처럼 확인했다. 이제는 시간에 맞춰 약국에 들리는 일도 추가되었다.
그리고 기침소리에 좀 더 예민해진 대신 혐오에 대한 감수성은 낮아졌다. 확진자의 경로를 보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쉽게 원망했다. 동선에 대한 사람들의 추측을 가십처럼 소비했다. ‘병신’이라는 말은 (마음속으로) 정색하면서 우한 바이러스로 불릴 때 중국을 향한 혐오발언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그들이 감수해야 할 인권 침해에도 무감각했다.
서울에서 콜센터 집단 확진 소식과 함께 신천지 교인이 포함되었다는 뉴스가 떴다. 역시, 그럼 그렇지. 신천지라는 사실만으로 일단 비난하는 말에 죄책감이 없어진다. 신천지 교인의 신상을 다 밝혀서 감염을 늦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선택한 종교인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음성으로 판정된 40대 신천지 교인이 투신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여전히 신천지를 혐오한다. 약한 마음을 이용하는 모든 종교를 혐오한다. 종교는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위로로 위장해 일상을 망가뜨리는 종교라면 분명 옳지 않다. 하지만 신천지를 믿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을 향한 모든 비난과 혐오도 마땅한가. 그 혐오는 분리 가능한가. 그들도 세뇌당한 피해자일지도 모르는데 신천지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쉽게 그들을 혐오하고 있었다. 당연한 혐오라고 정당화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날이 서 있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맞벌이하는 집집마다 비상이다. 손님이 끊기고 월세를 걱정하는 자영업자들과 원치 않는 무급휴가로 당장 생활비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만 간다. 바이러스는 쉽게 잡힐 것 같지 않고 맥락 없는 혐오도 길게 늘어질 것 같다. 마음이 좀 더 예민해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