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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Apr 19. 2020

<라라랜드> 잃지 않은 꿈과 잊지 않은 마음

데이미언 셔젤 <라라랜드>, 2016


1. 미아를 깨우는 경적과 멜로디


영화의 오프닝을 알리는 <Another Day Of Sun>이 울려 퍼진다. 꽉 막힌 고속도로. 어디서부터 막히는 건지, 어디로 가야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답답한 풍경 속에서 작은 폭죽처럼 여기저기서 노랫말이 터져 나온다.


Climb these hills I'm reaching for the heights

언덕들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고 있어

And chasing all the lights that shine

그리고 빛나는 모든 불빛들을 쫓고 있지

And when they let you down

그들이 널 좌절시키면

You'll get up off the ground

다시 딛고 일어날 거야

Cause morning rolls around

왜냐면 아침은 다시 찾아올 거고

And it's another day of sun

그건 또 다른 날의 태양이잖아.


영화를 처음 볼 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노랫말이 들린다. 영화의 첫 시퀀스이자 영화의 내용을 관통하는 첫 테마곡은 관객들을 단숨에 매료시킨다. 댄서들이 자동차 사이를 누비며 범퍼를 밟고 뛰어오르고 빠르게 전환되는 카메라 덕에 가사를 곱씹어볼 여유가 없다. 하지만 노래 가사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것이 미아의 꿈과 사랑의 결말에 대한 은유임을 알 수 있다.


‘it's another day of sun’을 반복하며 노래는 끝이 나고,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제 다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아(엠마 스톤)는 차가 움직이는지도 모르고 대본에 빠져있다. 그때 경적을 울리는 건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다.


<라라랜드> 스틸컷


세바스찬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미아에게 시그널을 보낸다. 경적과 음악으로. 미아와 세바스찬의 만남은 항상 피아노 선율에서 시작한다. 소리에 홀린 듯이 발걸음을 향했던 식당에서 세바스찬은 미아를 차갑게 무시하고 지나친다. 미아가 순수하게 배우라는 꿈에 이끌려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차갑게 외면당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미아는 꿈과 그의 부름에 계속해서 응답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세바스찬은 미아를 계속해서 부른다. 미아는 애인과 그의 형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그들이 나누는 주제에 도통 끼어들 수가 없다. 그들은 미아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예쁜 마네킹처럼 앉아 있던 미아는 스피커 속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멜로디를 듣는다. 미아는 현실이었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영화관으로 천문대로 꿈속처럼 밤하늘로 날아오르고 별자리를 따라 유영한다.


사랑의 계절이 시작된다.


<라라랜드> 스틸컷


2. 잃지 않은 꿈과 잊지 않은 마음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 한없는 낙관으로 사랑과 꿈의 달콤함에 빠진 둘에게 미아의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는 세바스찬을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미아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애인은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엄마에게 미아는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잘 될 거라는 낙관은 타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세바스찬은 전통 재즈에 대한 신념을 접고 키이스의 세션에 들어가게 되고 크게 성공한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세바스찬에게로 밀려드는 관객들로 멀어지는 미아의 공허한 시선 속에서 이 둘의 관계가 위태로워졌음을 알게 된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근본적인 갈등은 ‘사랑’이 변해서가 아니다. ‘꿈’에 대한 서로의 열정이 다른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미아의 첫 연극이 만족스럽지 못하게 끝나 버리고 미아는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한다. 자신의 꿈도 사랑도. 세바스찬은 사랑이 끝났음을 받아들인다. 미아는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떠나고 세바스찬에게 미아를 찾는 전화가 온다. 세바스찬은 무시하려고 하지만 오디션이라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도서관이 집 근처에 있다던 미아의 말을 기억하는 세바스찬은 그녀를 다시 찾아온다. 미아가 반응하는 경적 소리로. 헤어지자는 말에는 끝까지 붙잡지 못했던 세바스찬은 오디션을 포기하겠다는 말에 미아를 다그치고 붙잡는다. 자신 없이 살아가는 미아는 존재해도 꿈 없이 살아갈 미아는 존재할 수 없다.


<라라랜드> 스틸컷


미아의 오디션이 끝나고, 둘은 사랑에 빠졌던 천문대를 바라보며 ‘경치가 별로’라고 말한다. 씁쓸한 장면이다. 깊은 밤에 찾아왔던 사랑은 이제 끝나 버렸다. 하지만 한낮에도 미아와 세바스찬은 여전히 꿈은 잃지 않았다.    

5년 뒤라는 잔혹한 자막이 뜨고 미아와 세바스찬은 꿈을 계속해서 이뤄나가고 있다. 미아는 배우로 성공했고 결혼도 했으며 아이도 있다. 미아는 남편과 친구의 연극을 보러 집을 나서지만 도로는 예전의 어느 날처럼 차가 막힌다. 미아는 이제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내 차례가 오기를 한 없이 기다리지 않는다. 미아는 옆길로 빠져나와 남편과 식사를 하고 그들을 이끄는 멜로디에 클럽을 찾게 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다시 시작된다. 여전히 같은 꿈을 꾸지만 달라진 현실 속에서 맞닥뜨린 둘은 그들이 보냈던 계절을 떠올린다. 세바스찬은 그 계절마다 자신의 선택을 가정한다. 그때 첫 만남에서 미아에게 키스를 했더라면, 그때 세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미아의 연극을 보러 갔더라면. 그러한 가정 뒤에 상영되는 영화 속에서 그들의 행복 역시 가정일 뿐이다. 세바스찬의 마지막 연주가 끝이 나고 미아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둘은 서로를 향해 웃는다. 겨우 웃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5분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마지막 장면처럼 강렬하고 먹먹하다. OST <Visions of Gideon>에서 반복되는 “Is it a video?”이란 물음이 <라라랜드>에서도 반복된다. 그래서 그 물음의 주체에 더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다. 이 잔혹하고 아름다운 결말에 <라라랜드>는 꿈과 사랑을 그리는 흔한 로맨스 영화에 발을 뺄 수 있다.


쉽게 이루기 힘들 걸 알면서도 꿈꾸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며, 언젠가 이별할 걸 알면서도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다.


<라라랜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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