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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Aug 25. 2020

<남매의 여름밤> 어떤 눈물은 슬픔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윤단비 <남매의 여름밤>, 2020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소중한 추억을 저장하는 기억저장소에는 기쁨만 남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이 항상 단일하지만은 않다는 걸 경험하면서 우리는 감정에도 여러 겹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 유년을 다루는 영화를 볼 때마다 늘 <인사이드 아웃>이 떠오른다. 어떤 구슬이 기억되고 어떤 구슬이 폐기될지 영화의 장면 장면을 더듬게 된다. 어떤 섬은 무너져 내리고 어떤 섬은 또다시 만들어진다. 까마득하게 잊혔던 감정이 영화를 통해 마음 한 곳을 찌르르하게 만든다.



윤단비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남매의 여름밤>은 잊힌 어떤 감정을 자꾸만 찌르는 영화이다.


영화의 앵글은 거의 옥주(최정운)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옥주와 동생 동주(박승주)가 왜 이사를 가는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는 어떤지, 아버지는 왜 어머니와 헤어졌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옥주는 알고 우리(관객)는 모르는 정보 사이에서 우리는 옥주의 표정을 계속 살피게 된다. 옥주의 기분을 살피지 않는 건 동주뿐이다.



동주에게 세상의 감정은 아직 한 겹이다. 한번 약속을 어겼을지라도 엄마가 보고 싶으니 엄마를 보러 가고, 핸드폰을 사 줄 테니 춤 한번 춰보라는 아빠의 말에 부끄럼 없이 춤을 춘다. 옥주는 그런 동주가 못마땅하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고 자기감정을 때론 숨겨야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남자 친구는 옥주가 먼저 연락하기 전까진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마음에 대한 겨루기가 필요한 세계를 옥주는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에게 순순히 마음을 다 내주는 동주가 더 얄밉다.



하지만 아직 옥주의 세계는 모기장만큼이나 안과 밖의 경계가 불투명한 곳이다. 옥주가 쳐놓은 얇은 막은 너무나도 쉽게 누군가를 들일 수 있다. 고작 모기 정도만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얇은 막이지만 여름을 견디기엔 이만한 게 없다. 옥주는 여름이란 계절에서 겨우 모기만 쫓는 자신의 공간(마음)을 고모와 동주에게 내어준다. 그리고 두 남매(옥주와 동주, 아버지와 고모)를 지켜주는 단단한 보금자리는 할아버지의 것이다. 그래서 이 집을 팔아버리는 것은 옥주에게는 단순한 공간이 아닌 마음의 문제이다. 신발을 몰래 파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아버지의 지적은 치사하고 치사한 어른들의 세계에 옥주는 화가 난다.



옥주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에 놀란 듯 하지만 담담하다. 아직 누군가의 죽음을 이해하기에 옥주는 어리다. 옥주는 아직 할아버지보다 어머니를 그리고 장례식장에서도 웃고 있는 어머니를 본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고 있던 옥주를 깨우지도 않고 떠난다. 옥주는 하룻밤 새 둘을 잃었다. 옥주의 감정은 영화의 마지막에 터진다. 이제 식사 자리에 할아버지의 자리는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와 동주 자신뿐이다. 옥주가 왜 우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아프게 울지만 지나갈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먹먹하지만 남매에게 이 여름밤이 슬픔으로만 남진 않을 것이다. 여럿이 함께여서 즐거웠던 여름밤은 지나갔지만 그 마음은 남아 있다. 남매의 여름밤은 시간이 지나 다시 웃고 떠드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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