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희 <열아홉>, 2021
나의 열아홉은 여러 가지로 엉망이었기 때문에 평범했다. 가고 싶은 대학교에 가기에 성적은 모자랐고 친했던 친구와는 잦은 다툼으로 멀어졌으며 부모님은 자주 싸웠다. 집에 가기 싫어하는 평범한 열아홉이었고 앞으로의 나의 삶도 이대로 시시할까 봐 겁이 났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무엇으로부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소정’이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을까 줄곧 생각했다. 열아홉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소정은 처음에 폭력적인 아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지 않았을까. 괴물 같은 아빠만 사라지면 조금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떠난 곳에도 자유는 없었다. 음악이라는 안온한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들 때마다 엄마가 내지르는 비명은 소정을 현실로 차갑게 복귀시켰다.
엄마만 없으면...
소정은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에게 영원히 짐이 될 엄마를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죽어버린 뒤의 삶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소정의 바람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새 신을 신고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길 바랐을 것이다. 이제 소정은 엄마가 있었기에 존재했던 지옥 같은 공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지옥의 문 바깥에 무엇이 있을지 소정은 두렵기만 하다.
결국 소정은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숨긴다.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소정은 모든 판단을 유보한다. 소정에게 도움을 줄 만한 어른은 없다. 먼저 도움을 청해야 기꺼이 들어주겠다는 어른들 앞에 열아홉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싫고 그냥 관심 꺼줬으면 하는 생각만 가능한 시기에 ‘어른’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영화의 배경인 2008년은 내가 열아홉이었던 시절과 꼭 맞아 있다. 싸이월드와 MP3 하나만으로 소환되는 그 시기의 수치와 우울이 있다. 아무도 나를 몰라줬으면 싶으면서도 간절히 누가 나를 알아봐 줬으면 싶었다. 굳이 미니홈피에 전체공개로 일기를 쓰고 굳이 그 위를 스티커로 덮었다. 누군가 작은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나의 마음을 봐줬으면 하는 열아홉 같은 시기가 있었다. 눈을 감고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음악에만 집중하면 세상에서 완벽하게 분리된 것만 같았다. 재생목록 없이도 다음에 무슨 노래가 나올지 알고 있었다. 미키마우스에는 눈도 입도 없었다. 무엇도 드러내지 않는 그 작은 기계 안에서 오직 귀만 움직였다. 온 세상에 귀만 기능하는 듯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세상에서 나는 호흡기처럼 MP3를 달고 다녔다.
소정에게 성현은 그런 존재였다. 호흡기 같은 존재. 겨우 숨통을 트여주는 존재. 눈과 입이 기능해야 하는 세상에서 숨을 쉬라고 말하는 존재. 하지만 성현은 소정의 구원자가 아니다. 성현이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소정과 같이 울어주고 소정과 함께하겠다고 말한다. 겁내지만 도망치지 않았고 누군가 위험할 때 망설이지 않았다. 소정 역시 할머니가 숨을 헐떡일 때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비닐을 갖다 대 숨통을 틔워 준다. 엄마의 환영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소정은 마침내 지옥에서 걸어 나왔다. 그 다음엔 자유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열아홉의 자유는 변덕스럽고 십여 년이 지나버린 지금 내가 애타게 갈망했던 자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소정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잊었으면 좋겠다. 그 시절 나를 그렇게 아프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