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가 끝이 났다. 누군가에겐 실망스러운 결말로 종영 후에도 반응이 뜨겁다. 이진과 희도가 쌓아 올린 아름다운 서사가 납득할 수 없게 끝나 버린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별이 충분히 이십 대의 어느 날다웠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뜨거운 사랑이었고 너무나도 통속적인 이별이었다.
나는 희도와 유림의 우정이 희도와 이진의 서사보다 사실 더 좋았다. 그 둘의 마음 역시 분명한 ‘사랑’이었다. 희도는 유림이 러시아로 귀화해 메일을 읽지도 답장도 하지 않았지만 유림을 원망하지 않았다. 유림이 그곳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을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도는 누구보다도 유림을 잘 아는 사람이고 또 응원하는 사람이었다. 희도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유림이 잘 지내길 꼭 결승전에서 자신과 맞붙어 주길 바란다.
이진이 아무런 말도 없이 서울을 떠났을 때도 희도는 이진의 연락을 믿고 기다렸다. 아무런 기약 없는 기다림에도 희도는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연인이 되고 6개월 동안 지지부진한 만남 속에서 희도는 크게 상처받는다. 어린 시절 엄마한테서 받았던 아픔이 다시금 되풀이되고 누군가 일방적으로 미안해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희도는 미안해하지 않는 엄마도 미안해하는 연인도 결국엔 자신에게 아물지 않은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무지개 같았던 마음에 ‘사랑’이라고 단정 지어준 이진이 희도와 사귀는 것만큼은 계속해서 망설인 이유는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향한 믿음이 친구에서 연인으로 변할 때 서로에게 기대하는 방향이 달라졌다. 희도의 응원이 닿지 않은 건 희도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도 커졌기 때문이다. 희도와 이진이 20대가 아니라 30대였다면, 모든 사랑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면 아마 이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서로가 너무나 특별했고 그 관계가 깨지는 순간 사랑도 깨지는 거라고 돌이킬 수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나의 사랑이 완전무결했으면 했는지. 기대하는 것도 많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나 자신이 또 너무나도 미운 그런 날들이었다.
나는 이 드라마가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응원이었고 숨죽인 기도 같았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같은 목표를 향하는 희도와 유림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 내몰린 둘을 동시에 응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최선을 다한 어느 순간이 있다면 그 결과가 어떠하든 결국엔 웃을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쏟아부었던 힘이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니라고. 펜싱을 그만두기 위해 예선전을 치르던 후배도, 자퇴를 택해야 했던 승완도, 나는 사실 그들이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 조금만 현실과 타협했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멋지게 끝을 냈고 또 멋지게 또 다른 길을 걸어갔다.
모든 이별은 아프지만 모든 이별이 아픔으로만 기억되진 않는다. 이별 뒤에 이어진 희도의 사랑 역시 아름다웠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은 기억에서 아련해진 모든 인연이 어디선가 또 다른 사랑을 틔우고 잘살고 있을 것이다. 통속적이지만 그래서 다행인 평범한 하루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