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습관 24_2022.05.27
바다가 없는 도시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관광지로 유명한 해운대나 광안리도 그저 사람 많고 부산스러운 곳일 뿐 일부러 바다를 찾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바다는 한 번도 욕망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가까이 있는 것, 너무 익숙한 것, 너무 익숙해서 지겨운 것, 가족 같은 것. 그런 것들은 욕망할 수 없었다. 서울에 와서야 비로소 바다가 그리웠다. 가족도 그리웠다.
서울에 와서 재미있었던 건 다들 한강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이었다. 서울 사는 사람들에겐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한강을 사랑했다. 2호선 지하철을 타고 당산역과 합정역을 지날 때 커튼을 걷어 낸 듯 느닷없이 환해지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여기가 한강이야.”
이 순간을 놓치기라도 할세라 조바심 나는 달뜬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사람들도 몇몇 창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지하철과는 철저히 유리된 풍경이 펼쳐졌다. 햇살에 조각난 윤슬이 물결을 타고 부드럽게 일렁였다.
무언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이 심장이 뛰었다. 부산 사람이 고작 강줄기 따위를 보고 설렌다니.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버거운 서울에서 무용한 공간을 느긋하게 차지하고 있는 한강을 바라보며 마음이 이상했다. 바다도 아닌 것이 온 서울 시민을 홀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날이 따뜻해지면 홀린 듯이 한강 앞에 돗자리를 펼쳤다. 자전거를 탔다. 술을 마셨다. 아이와 노인이 공평하게 한강을 차지했다. 한강은 해운대와는 완전히 다른 품을 내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바다가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부산집에 가면 엄마는 목마른 애한테 냉수를 떠먹여 주듯 아빠랑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다녀오라고 말한다. 기름 냄새가 묻어 있는 포터를 타고 기장을 지나 아무도 머무를 것 같지 않은 바다에 차를 세운다. 부녀는 마치 일하러 온 사람들처럼 묵묵히 해변을 거닌다. 아빠는 낚시꾼들의 어망을 기웃거리고 몇 마디를 보탠다. 아빠가 그리운 건 바다가 아니라 딸일 텐데 바다가 그리운 사람처럼 걷는다. 그렇게 얼마간 걷다가 모든 볼일을 끝낸 듯 아빠가 이제 그만 가자고 말하면 차에 올라탄다. 욕망하기엔 다소 쓸쓸한 풍경들을 안고 탄다. 누군가 “여기가 어디”라고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했다.
서로가 조금은 덜 지겨워지기 위해 바삐 떠난다. 바다가 없는 도시로. 여름이 형벌 같은 곳으로. 도시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자꾸만 물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