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습관 23_2020.08.09
어른들이 전에 본 적 없는 표정을 지을 때면 어린 나는 불안해졌다. 그들이 화낼 때보다 그들이 울 때 더 당혹스러웠고 우는 것만큼이나 전에 없이 과하게 행복해 보일 때도 불안했다. 행복 그 자체보다 쾌락에 가까워 보이는 웃음 속에서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술을 마시고 불콰해진 얼굴로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를 때는 더 그랬다.
나에게 첫 노래방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미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상태라 어른들은 흥이 올랐고 자연스럽게 2차는 노래방으로 향했다. 다들 목소리가 커졌다. 지하로 내려가는 어두운 계단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시끄러웠다. 평소에 우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입을 막던 어른들이 남 눈치도 보지 않고 크게 웃었다.
여기저기 좁은 방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왔고 어딘가 청승맞은 구슬픈 목소리가 음정 박자를 무시한 채 왕왕 울려댔다. 나는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집에 가자고 했다. 방 안은 죄다 컴컴했고 너무나도 시끄러웠다. 상기된 어른들의 표정이 무서웠다. 나의 칭얼거림은 가볍게 무시되었고 안쪽 단체석에 술과 마른안주가 세팅되었다. 어딘가 나쁜 짓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 같았다.
방은 컴컴했고 엄마 아빠 얼굴이 흐릿했다. 여기서 내가 알던 부모님을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은 어린아이 다운 상상력이 나를 더 두렵게 했다. 머리 위로는 미러볼이 촌스러운 색을 뿜으며 돌아갔고 나는 어지러웠다. 나를 이런 곳으로 데리고 온 어른들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뾰로통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의 기분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른을 넘긴 나는 술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한다.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 몽롱해지는 기분을 이제는 안다. 맥주 대신 배분받은 사이다를 들고 의자 깊숙이 몸을 누인 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나를 기억한다. 그때 내가 느낀 건 어른들에 대한 묘한 배신감과 소외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어린 나의 마음은 헤아릴 기운도 없이 소진해야 할 일상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낯선 표정은 여전히 두렵다. 내가 몰랐으면 하는 말들을 뱉어 놓을 것만 같다. 그래서 대신 모르는 얼굴을 하고 익숙한 노래를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