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형태를 변주하는 영화는 너무나도 많다. 입양이라는 소재도 단독으로 쓰기엔 진부하고 인공지능 로봇에 정을 느끼고 가족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새롭진 않다. 영화 <애프터 양>은 따분할 수 있는 설정을 한 번 더 꼬아 입양한 딸 미카와 그런 미카를 돌보는 안드로이드 양을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데리고 온다. 결과적으로 이 4인 가족은 모두가 다른 피(+기계)를 가진 특별한 가족 형태를 보여준다.
영화의 오프닝 4인 가족의 댄스 경연은 영화의 모든 분위기와 동떨어져 있는 듯하면서도 많은 질문을 대신한다. 그들이 추는 춤은 어떤 제의(祭儀) 같기도 하다. 네 명 모두가 같은 사람처럼 동작을 맞춰야 하고 틀리는 사람이 생기면 자동 탈락하게 된다. 아쉬운 탄성과 함께 제이크와 카이라, 미카는 춤을 멈춘다. 양만이 탈락이라는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 춤을 춘다.
양에게 문제가 생겼다.
안드로이드 로봇을 다루는 영화라면 최대한 관객과의 심리적인 거리를 가깝게 하기 위해 그들을 최대한 인간처럼 묘사하고 끌고 나간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때쯤에야 그들의 몸속에 흐르는 것이 인간과 같은 뜨거운 피가 아니라 차가운 금속임을 드러내며 안타까움을 더한다.
하지만 <애프터 양>은 제목 그대로 양의 모든 기능이 끝나버린 이후의 시점을 다룬다. 축 늘어져 가슴을 드러내고 누운 양은 누가 봐도 명백한 안드로이드이다. 양을 믿고 따르던 미카도 이 사실을 알고 있고 '구입'이나 '수리'와 같은 말들이 일상적으로 오고 간다.
카이라는 양에게 너무 많이 의존해왔다며 이제 그 빈자리를 우리가 채워야 한다고 제이크에게 말한다. 제이크도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양을 되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시도하려고 한다.
양을 처음 구입했던 곳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사설업체에서 양이 특수한 기억장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양이 단지 몇 개월 만에 반품된 중고품이 아니라 알파, 베타, 감마라는 기억 저장고를 거친 제품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양은 '알파'에서 자신의 오랜 주인이었던 기억을 가지고 그녀의 복제인간인 에이다에게 친밀감을 표한다.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게 된 제이크는 양의 기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양의 기억은 단순히 보고 들은 걸 무작위로 저장한 것이 아니다. 나뭇잎 사이로 들이치는 햇살,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뒷모습, 사람들과 나누었던 의미심장한 말들은 양의 기억이 단순히 중요한 데이터를 선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이크는 에이다에게 묻는다. 양이 사람이 되고 싶어 했냐고. 에이다는 너무나도 '사람'의 관점에서 한 질문이라며 그 질문을 부정한다. 앞선 많은 영화가 그랬듯 안드로이드에게 '사람'은 동경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사람'은 그 둘을 구분 짓고 그들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자여만 했다. 하지만 제이크가 할 수 있는 건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신의 가족이 양의 전부일 거라고 생각한 제이크는 더 오랫동안 양이 그리워 해온 기억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양은 '탈락'이라는 말에도 춤을 춘다. 양의 지난 가족(알파와 베타)들은 양을 더이상 필요하지 않아 떠나보냈다. 자신의 끝이 무엇인지 아는 양은 어디에도 분명히 속하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을 비관했을까? 양은 4인 가족이라는 공식적인 기준안에서 그 기능을 마감했다. 아무도 양에게 질문할 수도, 답을 들을 수도 없다.
카이라와의 기억 속에서 양은 '나비'이야기를 한다. 나비를 수집하는 양은 "애벌레에겐 끝이지만 나비에겐 시작"이라는 말을 한다. 양의 기능은 끝나버렸지만 양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남았다. 그 기억의 주인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