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 Dec 23. 2023

새로운 아이템이 생겼다

미루지말자, 건강검진

"그냥 봐도 보이는데 모르셨어요?"

육안으로도 뻔히 보이는 것을 너는 왜 모르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눈앞의 의사가 그닥 맘에 들지 않는다. 눈앞에 갑상선 모형을 들이대며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저 입가의 미소도 맘에 들지 않는다. 조직검사를 하는 길지 않은 시간, 눈을 감고 있자니 어린시절 읽었던 혹부리영감이 생각났다. 아. 왜 나는 알고 지내는 도깨비 하는 없는 것인가.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도깨비한테 뚝 떼어줬으면 좋겠다. 혹만 수집하는 도깨비 어디 없으려나.


도깨비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점점 커져서 결국 그 안에 사람을 가둬버리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어둑시니라는 요괴가 있다.  근 열흘 이 어둑시니가 자라고 있는 것마냥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 두려움이 결국 나를 이 침대에 눕혀버린것만 같았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이 두려움의 원천은 건강검진이다.

매일매일 여기저기 아프고 환절기마다 골골거리긴 하지만 특별히 어디가 안 좋은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몇년째 큰 변동없는 몸무게를 보면 급격한 체중변화를 동반하는 큰병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진결과에 무언가 나올것 같아 무서워 검진을 차일피일 미룬것이 벌써 5년전,  올해는 꼭 해야지 하는 맘으로 하루이틀 미룬것이 벌써 연말이다. 더이상 갈곳이 없다. 난 홀수년도 출생자이고 올해를 넘기면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고객님의 건강검진이 예약되었습니다.  활은 이미 시위를 떠났다.


그날이 왔다. 12시간의 공복덕에 간만에 붓지않은 얼굴로 맞은 아침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병원엔 걱정반, 의무반으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줄지어 접수를 마치고 어느 공장 컨베이어 벨트위의 물건들처럼 바닥에 붙은 화살표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관문인 진료실 앞이다. 문제없다는 인증스티커를 받을 마지막 포장단계이다.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머리속은 온통 울부짖고 있는 위장을 조용히 시킬수 있는 근처 식당들의 메뉴로 가득차있었다.

"환자분 갑상선에 혹이 있으시네요? 모양도 괜찮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크기가 큰편이니 조직검사는 해보시는게 좋겠어요."

뭐라고라? 조직검사? 나 암인가? 이보시오 의사양반, 그게 그렇게 해사하게 웃으면서 할 말은 아닌거 같은데. 걱정할 필요없다는 뜻에서 한 말이라는 거 이해는 하지만 웃는건 좀 너무 한 거 아닌가? 잘못된 배려의 표본 같으니라구.

不通. 난 인증스티커는 커녕 포장을 풀고 다시 컨베이어 벨트로 올라가야했다.

하마터면 웃는 얼굴에 침뱉을뻔 . (사진출처 : 픽사베이)

병원에서 나오니 문득 임신했을때가 생각났다. 병원에서 임신확인을 받고 산모수첩을 손에 쥐고 나오자마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뿐인가. 입덧이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후에도 누군가 이제 괜찮냐고 물어보는 순간 잠잠했던 입덧은 다시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갑상선에 혹이 있습니다. 라는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몸이 아픈것같았다. 그동안 유난스럽게 추위를 탄것도, 갱년기 전조증상이라고 웃으며 넘겼던 불면증도, 인생의 동반자같은 만성피로도 모두 불과 몇시간 전까진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2.4cm 짜리 혹 때문인것만 같았다. 이런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란.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제 아무리 괜찮다고 주문을 걸어봐도 불쑥불쑥 마음 한자락 들추고 들어오는 두려움은 여전했다. 두려움 만큼이나 사람을 병들게 하는게 기다림이 아닐까.

아이들을 제법 키우고 나니 이젠 몸 속 여기저기에 혹을 키우는 나이가 되었다. 개중엔 뭘 먹고 컸는지 눈에 띄게 잘 자란 아이들도 있다. 뭘 먹고 컸는지 알아야 더 안크게 조절 할수 있을텐데 이건 또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한다. 그냥 작아지길, 더 자라지 않길 기다리란다. 세상 살면서 내 의지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몸만드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살던 사람이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이런 감정을 언제 느꼈더라.

엄마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엄마의 뜻대로 잘 따라오는 아이들을 보며 그들의 미래를 자신한 적이 있었다. 내 몸속에서 뭐가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일 당장 수술대에 올라갈지도 모르면서 튀어나온 뱃살을 신경쓰고, 얼굴의 주름을 가리기 위해 좋다는 화장품을 찾아다니던 지금처럼, 아이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을 마치 내 업적인양 드러내면서 세상 모든 엄마들의 환상속에 있는 아이들이 바로 내 아이들이라 믿었었다. 어리석은 자신감이라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따지고보면 자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것이다.


검사결과는 양성.  치료가 급한건 아니지만 더 자란다 싶으면 공사가 커지기 전에 시술을 하는게 좋으니 추적검사는 필요하단다. 그래. 40대면 누구나 추적검사 하나쯤 장착하며 사는거지. 인생에 관한 오만한 자신감이 자랄때쯤 한번씩 경종을 울려주는 귀한 아이템을 하나 얻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남은 이작가의 꿈같은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