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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프로듀서 Aug 23. 2019

간단하지만 만만하지는 않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울푸드

누구나 김밥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필자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소풍을 간다면 메뉴는 백이면 백 김밥이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친구들의 도시락통 속에는

모두들 제각각의 개성과 독특함을 가진 김밥이 어머니들의 정성을 품은 채로 담겨 있었다.


마치 손가락의 지문처럼 김밥은 집집마다 집안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늘 지역 향토음식의 다양성을 설명할 때, 김밥만큼 완벽한 다양성을 가진 음식은 찾기 힘들다.

봄나물이 들어가는 김밥도 있었고, 김치를 넣는 집도 있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김밥은 음식계의 '슈퍼스타 K'였다.

누구의 재료가 더 맛있는가, 누구의 김밥이 더 독특한가

소풍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김밥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코리안 패스트푸드인 김밥은 

역설적이게도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슬로푸드이기도 하다.


만드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응답하라1998의 김밥(左)과 응답하라 1997의 김밥(右)

필자에 기억 속의 최고의 집밥이 김밥인 이유는 '길고 긴 여정'이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공무원이셨던 어머니는 잦은 야근으로 퇴근을 하시면 늘 피곤한 모습이셨지만

그래도 아들 밥은 늘 챙겨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사회인이 되어보니 퇴근 한 다음 집에 와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고장 난 오토바이를 강제로 밀어서 시동을 거는 것처럼 굉장히 고된 일이다.


그런 고된 몸을 이끌고 밤늦게까지 김밥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터미네이터'를 떠올리게 한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특징과는 다르게 그 과정은 전혀 간단하지 않다.

밥을 지어서 간을 하고, 재료들을 재단해서 프라이팬에 볶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말아내는 과정까지

김밥을 만드는 날이면 저녁 늦게까지 주방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한국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김밥은 참 아이러니한 존재이다.

먹고 싶을 때나 생각날 때는 의욕이 넘치는데, 막상 만들자니 눈앞이 캄캄하다

그래도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말처럼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의 모습은

어머니들에게는 하나의 활력소였을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김밥이 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 아닐까.

이일화 씨가 산더미 같은 김밥을 만들면서 '먹다가 모자라는 것보다 낫다'라는 철학처럼

집밥은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의 크기를 보여주는 척도이며

김밥은 집안의 엔진과도 같은 어머니들을 상징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 김밥이 한식이냐고 묻는다면

한식계의 크나큰 논란 인물이었던 황교익 칼럼니스트


이러한 수많은 한국인들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김밥을 한식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황교익 칼럼니스트.


그는 김밥은 일본의 마키(김초밥)에서 유래된 음식이기 때문에 한식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실 필자는 황교익 칼럼니스트를 정말 존경했다.

광고와 자극적인 맛이라는 수렁에 빠진 한식에 대하여 시원한 일침을 날리며

한식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의 모습은 나에겐 한국에 나타난 음식계의 영웅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의 음식사랑이 상당히 왜곡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음식이 바로 김밥이었다.


일본의 마키(左)와 한국의 김쌈(右)


사실 김밥의 국적 논란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급의 답답한 문제였다.


본초강목에는 신라시절부터 바다에서 채취해 먹었다는 기록이 있었으며

종이형태의 김은 고려시대부터 기록이 나오기 시작하니, 

한민족에게 김은 꽤나 오래된 시간을 보낸 죽마고우였다.


일본의 경우 42대 천황인 몬무 천황 때 처음으로 김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에도시기(17~19세기) 처음으로 틀을 이용한 종이형태의 김을 만들어냈으니

김의 식문화는 누가 뭐래도 한국이 앞서있다는 것.


그런데 김을 먹는 방식으로 따져보려니 문제가 어려워진다.

김발을 이용하여 원통형으로 마는 방식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에 전해지는 방식인데

이 부분의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식초다.

김밥의 밥을 간할 때 식초를 넣는 1959년 경향신문 기사

요즘은 참기름으로 간을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한동안 식초를 사용한 김밥에 대한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유뷰초밥을 제외하면 밥에 식초 간을 하지 않는 

한국 특성을 생각해보면 한국의 김밥과 일본의 마키(김초밥)의 연관성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렇다면 정말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김밥은 한식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일까?

황교익 칼럼니스트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일본을 본다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돈카츠, 고로케, 카레라이스 등등 '일본요리'라고 불리고 있는 수많은 음식들은

커틀렛, 크로켓, 카레의 일본식 어레인지를 거친 서양의 요리다.

그 유명한 일본의 라멘도 중국에서 전해진 음식이니, 사실 일본요리는 수많은 어레인지의 역사인 것이다.


그 누구도 이러한 일본요리를 서양요리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미 수많은 세월이 흐르며 그들의 문화에 물든 음식은 누가 봐도 '일식'이다.


음식은 살아있는 역사교과서이다.

수많은 국가들의 문화적 교류를 누구보다 잘 보여주며, 음식의 역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중국의 짜지앙멘이 화교들을 통해 짜장면이 된 것처럼

비록 일본의 마키(김초밥)에서 시작되었지만,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만의 방식으로 바뀌며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된 김밥을 감히 일본음식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정말 패스트푸드가 되어가는 김밥

편의점 대표 패스트푸드인 김밥

그런데 요즘 사실 집에서 직접 말아먹는 김밥은 참 보기 힘들다.

속도의 시대, 통신사 광고처럼 너무나 빠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요즘

따듯한 밥 한 그릇을 구경하기 참 어렵다

2000년 대생들에게 집에서 싸주는 어머니의 김밥은 더 이상 보기 힘든 귀한 물건이다.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누구나 똑같은 김밥을 똑같이 먹으며 똑같이 일하는

정형화되어가는 새로운 시대, 김밥은 그 현실을 너무나도 가혹하고 선명하게 보여준다.


따듯한 집밥과 한식이라는 주제의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방금 전 먹은 음식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참으로 슬픈 현실이지만 프랜차이즈 도시락 한 끼로 간단하게 때웠다고 말하게 된다.


미식의 시대, 먹고사는 것의 걱정이 없어졌으니 점점 맛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끊임없이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맛집들, SNS를 뜨겁게 달구는 간편한 음식들

영국의 산업혁명이 영국 요리를 망쳐버린 것처럼, 우리는 점점 맛있는 음식을 잊어가고 있다


한식이 잊히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진정한 미식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글을 마치며...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집에 김밥이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본 김밥은 오래된 친구를 보는듯했고, 오래간만에 따뜻한 집밥에 마음을 녹일 수 있었다.


부추가 들어간 김밥, 볼 때마다 어머니의 아이디어는 참 재미있다.


정형화된 사회에서, 집밥은 무수한 개성과 다양성을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는 허영만 작가의 말처럼

'어머니'들의 힘이 있는 한, 한식은 영원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 독자 여러분들, 오늘은 집에서 김밥 한번 말아 보는 것 어떨까.


-FIN-


글쓴이-쉐프로듀서


[이 글은 우리家한식-한식문화 이야기 공모전 참가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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