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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Sep 05. 2024

파멸 작업의 서막 - 2

<정의의 베팅 1>에서 이어집니다

민 여사와 윤 여사는 파트너가 없으니여기서 누군가를 불러서 놀아보는 건 어때?”       

“그러지 뭐.”       

윤 여사는 웨이터에게 수표를 건넸다. 웨이터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한 후, 재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민 여사는 안 부를 거야?”       

“나는 필요 없어. 곧 올 거니까.”       

“누가 올 건데?”       

“그게 누구야?”       

“애인이야?”       

지나가 지금까지 파트너를 한 번도 데리고 온 적이 없어서 모두가 놀란 표정이었다. 클럽에 와도 1회용 파트너와 잠깐 즐기고 끝내곤 했던 지나의 성격을 잘 아는 여자들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똑똑똑.’       

순간 모든 시선이 문으로 쏠렸다. 베이지색 정장에 하얀 사선 넥타이를 매고, 왁스로 머리를 다듬은 치우가 들어왔다. 그는 사람들에게 목례를 하고 자연스럽게 지나의 옆에 앉았다.       

“자기 파트너야?”       

“어머, 너무 멋져! 물 찬 제비 같아.”       

“민 여사, 앙큼하긴. 언제 저런 보물을 숨겨 두었어?”       

“이제 보니 자기 파트너 자랑하려고 모이자고 했구나.”       

여자들은 단연 돋보이는 치우에게 부러운 칭찬을 쏟아냈다. 조용히 있던 한 여사가 입을 열었다.       

“민 여사의 파트너인가요?”       

질투가 섞인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닙니다.”       

모두가 치우의 부정적인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가장 당황한 사람은 지나였다.       

사람들을 둘러본 치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애인입니다.”       

지나의 어깨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여자들의 관심이 치우에게 집중되자 남자들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시기심을 드러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트집을 잡으려는 기회를 노렸다.       

그때 한 여사가 질문을 툭 던졌다.       

“무슨 일을 하세요?”       

“저, 저….”       

“치우 씨는 미국에서 체육학 박사를 받고 돌아와 지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       

지나가 그의 말을 가로막아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와우! 문무를 겸비한 영재네.”       

“귀공자에다 글로벌한 인물이고.”       

“민 여사는 좋겠다. 저런 영계를 애인으로 두다니.”       

여자들은 다시 두 사람을 붕 띄웠다. 지나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와 함께 거만함이 드러났다.           

“어느 대학에서 강의하세요?”       

“저, 그러니까….”       

“개설 과목이 뭐예요?”       

한 여사가 집요하게 물어왔다. 순간 치우는 머릿속에 수많은 대학 중 SKY만 맴돌았지만, 그 이름을 대기에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그는 우물쭈물거렸다.        

“야! 우리 치우 씨를 취조하냐? 한 여사 정보부에서 나왔어? 자기야, 더 이상 말하지 마!”       

지나가 한 여사의 말을 끊으며 대들었다. 졸지에 무시당한 한 여사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노크 소리와 동시에 웨이터가 중년 남성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멋쩍어하며 윤 여사의 곁에 앉음으로써 모든 짝들이 채워졌다.      

그 순간 한 여사가 애인인 김 사장에게 윙크하는 모습을 치우가 포착했다. 이어 김 사장과 남자들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치우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금씩 술을 마셨다. 이때 김 사장이 비틀린 혀로 명령하듯 말했다.      “어이, 젊은 친구. 나이로 봐도 내 막내 동생뻘이고 인생 경험으로도 내가 한참 선배니 이제부터 말 놓겠네. 불만 없지?”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은데.”       

“서너 살 차이가 나야지.”       

“김 사장 말대로 우리 말을 놓자고.”       

“한 번 형님이라고 불러 봐.”       

남자들은 맞장구치며 치우를 코너로 몰았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연식이 오래된 게 무슨 자랑이에요? 폐차나 빨리 되고 가는 순서만 앞설 뿐이잖아요!”  

지나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민 여사, 말이 좀 심하네. 당신에게 말 트자는 게 아니잖아. 그럼 당사자에게 물어보지. 어이, 큰 형님 같은 우리들의 제안에 불만 있나?”       

모두의 시선이 치우에게 향했다. 

민 여사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나이가 벼슬이라면 최고령자가 대통령이 되어야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으니 저에게 격식을 차려 주셨으면 합니다.”       

“자, 다들 가세나. 더 이상 저 새끼 제비와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네. 2차는 내가 쏠 테니 나가자고.”       

이 모임에서는 여성의 재력에 따라 그 애인의 서열이 정해지고, 그에 따른 영향력이 작용한다. 그런데 오늘 김 사장은 치우 때문에 체면이 구겨져 이를 만회하려고 시비를 걸었다. 물론 한 여사의 윙크도 한몫했다.       

“김 사장님, 지금 저를 새끼 제비라고 하셨습니까? 취중으로 이해하겠으니 빨리 사과해 주세요.”       

“내가 왜 사과를 해? 자넨 내가 보기엔 민 여사의 돈에 기생하는 기둥서방인데, 뭘. 대학 강사는 무슨 개뿔. 내가 영업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야. 딱 보면 견적이 나와. 누굴 바지저고리로 알아?”       

“맞아.”       

“김 사장이 사람을 잘 본다니까.”       

“분명 카바레 제비일 거야.”       

“아냐, 호스트바 접대부일 거야.”       

남자들은 일제히 입방아를 찧었다.       

“정말 이 사람이!”       

치우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김 사장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 자식이 감히 어디를 잡아!”       

김 사장의 주먹이 치우의 얼굴을 강타했다.       

“어이, 친구들. 오늘 이 제비 놈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걸!”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자들이 합세하여 치우를 바닥에 눕히고 짓밟기 시작했다. 순간 룸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나가 말리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여자들은 한 걸음 물러나 한 여사의 눈치를 보며 구경만 했다. 치우는 팔로 얼굴을 감싸며 온몸을 맞으면서도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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