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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Sep 06. 2024

파멸 작업의 서막 - 3

<정의의 베팅 1>에서 이어집니다

자기야많이 아프지?”       

“이 정도는 괜찮아요.”       

“나쁜 놈들. 비겁하게 여러 명이서 덤벼들다니. 더 화나는 건, 싸움을 말리지도 않고 구경만 하던 그 년들이야. 치우 씨를 칭찬할 때는 언제고. 이 연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두고 봐.”       

지나는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치를 떨었다.  

“근데 치우 씨, 왜 그냥 맞고만 있었어? 자기의 싸움 실력이면 저 멧돼지 같은 녀석들 10명도 패대기칠 텐데.”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마음을 바꿨어요.”       

“왜?”       

“내가 감정적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요? 서로 합심해서 저를 폭행으로 고소했을 거예요. 근데 그들은 다수이기에 내 진술이 불리해져서 구속될 수도 있어요.”       

“그랬구나.”       

“사실 더 큰 이유가 있지만….”       

“그게 뭐야?”       

“민 여사님을 생각해서 참았어요. 만약 내가 그렇게 했다면 민 여사님과 여사들의 사이가 틀어질 거예요. 아직 민 여사님께서 그들의 도움이 절실한데, 저만 참고 견디면 민 여사님께 피해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치우 씨, 정말 고마워. 난 자기가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어. 바보처럼 맞기만 하기에 한편으로 원망했었어. 미안해, 자기야.”       

지나는 감동하여 눈물이 맺혔다.       

“한 여사라는 사람, 늘 그렇게 기고만장해요?”       

“말도 마, 그건 약과야. 우리 중에서 제일 부자라고 얼마나 유세를 떠는지 짜증나 죽겠어.”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한 여사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데요?”       

“아마 나보다 두 배는 많을 거야. 그런데 그건 왜?”       

“이번에 한 여사의 재산을 뛰어넘을 기회가 생겼어요.”       

“무슨 말이야?”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민수 선배가 주는 마지막 소스경마에 베팅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최소 3배 이상은 적중했으니, 이 경주로 재산이 완전히 역전되는 거죠. 앞으로 한 여사에게 손을 벌릴 필요도 없고, 모임의 주도권은 민 여사님께 넘어가게 될 거예요.”  

“그럼 좋겠네! 이제 그 연놈들에게 복수할 일만 남았네.”     

‘드디어 파멸의 미끼를 물었어!’      

그러나 기쁨도 잠깐, 그녀는 곧 우울해졌다.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건 한 여사와 전 재산을 비교한 거고, 실제로 베팅할 현금은 얼마 안 돼. 대부분은 부동산과 금 사장에게 묶여 있거든.”     

지나는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골몰하던 치우가 무릎을 탁 쳤다.  

“좋은 방법이 있어요!”     

“뭔데?”     

“은행에서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는 거예요. 은행 이율이 저렴하잖아요. 그리고 여사들에게 최대한 돈을 빌려요. 어차피 하루만 쓰고 바로 갚으면 되니까요. 금 사장님에게 맡긴 자금도 모두 회수하고요.”     

“그런 묘책이 있었네! 이제 한 여사의 면상을 짓밟을 날이 며칠 안 남았네. 저팔계 같은 그년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만 해도 고소해 죽겠어.”     

치우는 평소 지나가 한 여사를 질투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려 병원에 가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호텔방으로 직행한 것이다.     

이런 대화는 생생한 현장감이 있어야 효과적이다. 사실 김 사장이 말을 놓아도 되겠냐고 했을 때, ‘그러시지요. 저보다 한참 연배신데요’라는 한마디면 끝날 수 있었다. 한국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나이를 앞세워 대우받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사달 날 일이 없었다. 

보통 때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돈이 되지 않는 싸움에 피를 흘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그렇게 했다면 지나를 설계에 끌어들일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김 사장에게 맞서 싸우고 실컷 두들겨 맞았다. 치우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민 여사님, 이번에 베팅을 하시면 한 여사와의 서열이 바뀔 거예요. 그리고 제 복수도 꼭 해 주세요.”     

“나만 믿어. 내가 천만 배로 갚아 줄 테니까.”     

‘이제 밥은 다 됐고, 뜸만 들이면 된다.’     

그는 지나의 목덜미에 키스를 했다. 매끄러운 살결을 음미하는 치우의 표정은 한 방울의 포도주까지 섬세하게 다루는 소믈리에와 같았다. 


다음 날, 치우는 금문성을 찾아갔다.     

“마사회에서 의심하는 것 같아 이제 선배가 소스를 못 주겠다고 합니다.”     

“그럼 어떡하지? 자금 해방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도 실장, 어떻게 좀 해봐? 응? 응?”     

고민하던 치우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사정을 하고는 얼굴이 환해졌다.     

“2주 후에 마지막으로 소스를 받기로 했어요.”     

“정말? 잘했어!”     

그의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민수였다.     

이때 치우가 당당하게 나왔다.     

“제 덕분에 4억을 넘게 땄으니 선배에게 줄 사례비 3천만 원과 저의 수고비로 1억을 주세요.”     

당황한 금문성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아깝지만 저놈의 요구를 거절하면 분명 소스를 안 줄 거야. 소스경주의 배당금과 비교하면 저 돈은 껌값이지. 지나의 손아귀에서 탈출할 이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어.’     

금문성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당연히 줘야지.”     

“민 여사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 주세요.”     

“내가 또라이냐! 그걸 말하게?”     

치우가 나가자 그는 다급히 세두를 불렀다.     

“조 실장, 지금 깔린 돈을 다 회수하려면 얼마나 걸리겠어?”

“최소한 3개월 정도는….”       

“안 돼! 하나님도 세상을 6일 만에 창조한 거 모르냐?”       

“그거랑은 다른데….”       

“무조건 2주 안에 전부 거둬들여. 이자는 신경 쓰지 말고, 알겠어?”       

“왜 그런 거죠?”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네.”       

세두는 부리나케 나갔다.       

‘2주 후면 나는 완전한 독립이야!’       

금문성은 두 팔을 높이 들어 만세를 부르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세두는 어깨들과  돈을 회수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치우는 두 사람이 베팅 자금을 최대한 모을 수 있도록 조교사에게 매주 받던 소스를 2주 후로 미루기로 했다.  지나는 라이벌인 한 여사를 제치기 위해 자금을 모았다. 먼저 모든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여자 전주들에게는 금 사장에게 투자한다고 속여 돈을 끌어냈다. 심지어 한 여사에게도 거액을 빌렸다.      

그녀는 금문성에게 대여금 반환을 요구했다. 지나의 자금을 모두 베팅하려던 그는 여러 핑계를 대며 경마일까지 질질 시간을 끌었다. 또 금문성은 친척과 지인들에게 높은 이자를 약속하며 돈을 차용했다.       

그래서 지나는 180억 원, 금문성은 120억 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제 맛작업은 최종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D-day 경주 전날, 고향으로 내려간 치우는 세두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 실장님, 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5억 원을 빌리고 잠수 탄 채무자를 잡아서 돈을 받아냈어요. 이 돈을 금 사장님에게 드려야 하는데 지금 제가 지방에 있어서 갈 수가 없고 금 사장님과도 연락이 안 되네요. 그래서 조 실장님에게 송금하니 대신 전해 주세요. 내일 마지막으로 소스경주가 있으니 일찍 올라갈 거예요. 저라면 그 돈으로 베팅을 할 텐데….”       

그의 아쉬운 듯한 말에 세두의 팔랑귀가 흔들렸다. 전화를 끊은 세두는 중얼거렸다. 

“외상 술값도 갚아야 하고, 도박 빚 독촉도 심한데… 세 배 이상은 늘 맞았으니까… 금 사장의 돈을 돌려주어도 최소 10억 이상은 손에 쥘 수 있어. 그러면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사채업을 시작할 수 있지. 이제 금 사장과 민 여사에게 아부할 필요도 없어. 단 하루만 지나면 나도 어엿한 사장이 되는 거야.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청심환이라도 먹어야겠어.”     

그는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힘차게 외쳤다.     

“드디어 내 인생에도 봄날이 왔다!”     

그 시각, 치우는 어린 시절 다녔던 고향의 성당에서 신부를 만났다. 신부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춘식과 민수는 어릴 적 자란 보육원에서 원생들과 함께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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