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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02. 2024

사채 해결사의 길 - 1

 도심 외곽에 새로 지어진 한 동의 빌라가 눈에 띄었다. 주변은 황량한 나대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빌라 입구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에서는 아스팔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옥상에는 '축 세경빌라 분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입구에는 여러 개의 화환이 놓여 있었다.

 그때 한 승용차가 빌라 앞에 멈추고, 세두와 어깨 세 명이 내렸다. 세두는 '분양사무실'이라고 적힌 2층을 쳐다본 후 그들에게 눈짓을 했다. 어깨들이 재빨리 계단을 올라갔고, 세두는 천천히 뒤따랐다.

 창가에 서 있던 고 사장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서 담배를 재떨이에 급히 비벼 껐다. 여직원은 사무를, 남직원은 카탈로그를 펼쳐 중년 부부와 분양 상담을 하고 있었다.

 “나 찾는 사람 오면 없다고 해!”

 “어디 가시려고요?”

 “오, 옥상.”

 고 사장은 허겁지겁 사무실을 나갔다. 곧 문이 벌컥 열리며 어깨들이 들이닥쳤다.

 “고 사장 어디 있어!”

 곱슬머리가 소리쳤다.

 “사, 사장님은 없는데요.”

 “지금 장난하냐? 우리가 전화한 지 10분도 안 됐어. 그때 네 입으로 있다고 했잖아. 입술 터지기 전에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세두가 여직원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사장 책상이 어디야?”

 “저, 저기인데요.”

 세두는 그쪽으로 가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재떨이에서 끄다 만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다. 세두는 꽁초를 집어 한 모금 빨고는, '후' 하고 내뱉었다.

 “쥐새끼 같은 놈. 연기처럼 사라졌군. 샅샅이 찾아!”

 어깨들은 방과 화장실, 베란다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형님, 여기는 없는 것 같은데요?”

 세두는 빌라 마당에 주차된 두 대의 승용차를 내려다보았다.

 “저기 검은색 차가 아저씨 차인가요?”

 “예, 제 차입니다.”

 이번에는 남직원에게 물었다.

 “다른 한 대는?” 

 “그 차는 제 것입니다.” 

 “그럼 차 키 좀 줘 봐?” 

 "그게, 어디 있더라….”

 남직원은 주머니를 뒤지는 척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 순간, 세두가 그의 가슴 쪽으로 다리를 뻗었다. 남직원은 캐비닛에 머리가 부딪히며 꽝 소리를 났다. 

 “물론 아가씨도 모르겠지? 근데 이걸 어쩌나. 우리는 일하는 데 있어 남녀평등이야.” 

 “저, 저기….” 

 겁에 질린 그녀의 눈빛이 위로 향했다. 세두는 이 힌트를 놓칠 리가 없었다. 

 “빨리 옥상으로 가서 고 사장을 잡아 와!” 

 어깨들이 우르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고 사장이 사무실 안으로 튕겨 들어왔다. 

 “아~ 나~ 이 자식들, 패지 말라고 했지?” 

 “형님, 저 새끼 아주 독종이에요. 각목을 들고 무협영화를 찍자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누군지 모르고.” 

 고 사장은 흉측한 모습으로 바닥에 엎드려 신음 소리를 냈다. 

 “고 사장님과 따뜻하게 대화할 것이 있으니 정중히 모셔라.” 

 어깨들이 고 사장을 일으켜 소파에 던지듯 앉혔다. 그때 중년 부부가 나가려 슬그머니 일어났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기다려요.” 

 세두의 엄포에 중년 부부는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안절부절못했다. 

 “원금 갚을 날짜가 지났으니 6억을 전부 갚거나, 우리가 제시하는 조건으로 하셔야겠는데요?” 

 세두는 1억짜리 당좌수표 6장을 탁자 위에 놓았다. 

 “지금까지 매달 이자를 꼬박꼬박 지급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이자는 들어왔지만, 이 수표의 지급일이 어제인 걸 몰랐어요?” 

 “이자만 제때 주면 기한을 연기해 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세두가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언제 그랬나? 기억이 없네. 고 사장님, 그 내용에 대한 녹음이나 각서가 있어요?” 

 “그, 그건 없지만….” 

 “거 봐요! 그렇게 중요한 걸 우리가 안 해 줄 리가 없잖아요?” 

 어이없는 고 사장이 따지듯 물었다. 

 “아니, 제가 빌린 돈이 2억인데 왜 6억을 갚아야 합니까?” 

 “이 사람 참 답답하네. 돈을 빌려주고 부도가 나면 우린 어떡하라고. 여기 당신이 직접 발행한 수표가 있잖아?” 

 “그건 견질담보로 잡은 게 아닙니까?” 

 “어쨌든 수표 지급일이 지났으니 내일 은행에 넣을 거니까 알아서 하슈.” 

 “조 실장님, 그러면 저희는 바로 부도가 나게 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견질담보는 정식 담보로 잡을 수 없는 물건을 담보로 취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완성 건물이나 비상장 유가증권 등이다. 또한 견질담보로 발행하는 당좌수표나 어음은 채권 확보가 불확실하기에 받을 금액보다 높게 책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 사장은 서류 뭉치를 들고 와서 내밀었다. 

 “보세요. 계약서들입니다. 입구 공사만 끝나면 곧 입주할 사람들이에요.” 

 세두는 서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독백처럼 떠벌렸다. 

 “내일 세경건설이 부도가 난다! 그러면 입주할 사람들이 계약을 취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지. 아, 어디 그뿐인가! 부도가 나면 고 사장은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우리는 이 빌라를 경매로 넘길테니 말이야. 아줌마, 이거 안타까운 막장 드라마 아녜요?” 

 “예, 예.” 

 “그런데도 이 빌라에 들어올 건가요?” 

 “아, 아닙니다.” 

 부부는 함께 대답했다. 

 “저희는 이만 가도 될까요?” 

 “이제 가셔도 됩니다. 오늘 고 사장님과 잘 소통되면 이 빌라에 입주하세요. 이 주택 아주 튼튼하게 지었어요. 글구 곧 주변에 신도시가 들어설 거라는 소문도 있고요. 내일 연락 주세요!” 

 세두는 나가는 부부의 등을 향해 외쳤다. 

 “뭐 해? 너희 차도 없는 것 같은데 저 사람 차를 타고 퇴근하지? 우리는 아직 고 사장과 거래가 남아 있으니까. 괜찮죠?” 

 고 사장은 직원들에게 가라고 손을 저으며 체념한 듯 말했다.

 “조 실장님이 제시할 조건은 뭡니까?” 

 “이 빌라 한 채가 3억 정도로 알고 있는데, 두 채를 우리에게 넘겨. 이게 그 계약서야. 단, 결정은 지금 해야 하고, 생각할 시간은 콩밥 먹으면서 해.” 

 “이건 날강도요.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고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까지 신속, 정확하게 말했는데도 이해가 안 되나? 너희들도 내 강의의 요점을 모르겠냐?” 

 “아닙니다. 훌륭한 명강의였습니다. 무식한 저희도 완전히 접수했습니다!” 

 어깨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봐! 셋이 합쳐 아이큐 100인 애들도 알아듣는 내용을 고 사장만 모르면 어쩌라는 거야? 난 정말 주먹보다 법으로, 법보다는 대화로 해결하고 싶은 사람이야. 물론 대화가 안 되면 주먹으로 마무리하는 게 문제지만.” 

 “이번 달까지 시간을 주세요. 그러면 다 갚겠습니다.” 

 “얘들아, 대화 끝났다. 주먹으로 결판 내자.” 

 그 순간 고 사장이 문 쪽으로 도망쳤지만, 곱슬머리가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발버둥치는 그를 바닥에 눕히고 세두가 올라탔다. 

 “다리 잡아, 다리 눌러….” 

 그 사이 점박이가 계약서를 가져왔다. 고 사장의 손가락을 펼치려 세두가 애쓸수록 그는 더욱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힘에 부친 세두가 그의 손을 꽉 깨물었다. 고 사장은 통증에 손을 빼려다 얼떨결에 세두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세두의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젠장, 오늘 피를 보네. 내 귀빠진 날인데….” 

 열받은 세두가 라이터에 불을 붙여 그의 주먹에 갖다 대었다. 

 “으악!” 

 비명과 함께 고 사장의 손가락이 펴졌다. 

 “이 자식아, 첫 장에 이름이 있잖아! 아이씨. 반으로 접어. 뒤에도. 아, 이 놈.” 

 세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계약서에 붉은 지장이 찍혔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고 사장 얼굴을 이렇게 망가뜨렸으니 금 사장이 또 난리칠 텐데.” 

 그는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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