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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05. 2024

타락의 이유 - 1

세두는 중년 남성과 상담을 중이었다. 그 남성의 자켓에는 한 회사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필요한 금액은 얼마인가요?”

“급히 1억 원 정도 필요합니다.”

“저희 돈은 긴급 사채라는 건 아시죠? 담보는 있으신가요?”

“부동산은 이미 은행에 저당 잡혀서….”

“그렇다면 공장의 기계나 재고는 담보 가치가 있어요?”

“그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저희 이자는 대출금의 10%입니다. 사장님께서 1억을 빌리신다면 열흘마다 이자가 천만 원씩 증가합니다. 이자가 두 번 연체되면 즉시 담보물에 대한 집행이 시작되고요. 대출을 원하시면 이 서류에 서명하시죠?”

남자는 서류를 몇 장 넘기다가 잠시 망설이며 중얼거렸다.

“하긴, 며칠 내로 납품 계약이 체결될 텐데… 이번 한 번만 이자를 준다고 생각하지.”

그때 인터폰 소리가 울렸다.

“설명은 내가 다 했으니 사장님께 나머지 대출 서류를 받아. 특히 3억 원의 견질어음과 각서를 확실히 챙겨.”

세두는 직원에게 지시한 후 금문성의 방으로 들어갔다.

“조 실장, 가구공장 건은 치우가 잘 해결했다네. 그 놈은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점이 맘에 들어.”

“그런데 치우는 마음이 약해서 일처리가 느린 게 문제지요. 그래서 힘든 일은 제가 직접 처리하죠.”

세두는 치우를 칭찬하는 것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일을 하려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 자식은 남의 아픔에 약한 면이 있어. 하지만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하는 놈이라면 적어도 배신은 하지 않겠지.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다음 미수 건에 대해 보고해.”

“세계공업사의 이자가 연체되고 있는데, 일주일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요.”

“그 집에는 가봤어?”

“네. 아내 말로는 남편이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자신과도 연락이 안 된다고 하네요.”

“아냐, 분명히 밖에서 마누라와 만날 거야. 여자를 미행해서 잡아와. 이 기회에 아예 공업사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버려. 다른 쪽에서 치고 들어오기 전에 가압류부터 해. 빨리 서둘러!” 

금문성의 호통에 세두는 급히 뛰쳐나갔다. 

“에이, 바보 같은 자식. 치우처럼 뒤처리가 완벽해야지. 세경건설의 사장을 때려서 원금에서 합의 봤잖아. 그래서 빌라 두 채만 날아가고 말이야.” 

금문성은 일부러 세두의 등을 향해 불만을 쏟아냈다. 이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근데 치우 놈, 처음보다 일처리가 느려지고 해결 방법도 달라지고… 무슨 일이 생겼나?” 

세두는 찌푸린 얼굴로 창가에 서서 담배를 물었다. 

“젠장, 말끝마다 치우와 나를 비교한다니까. 이러다 진짜 그 자식에게 넘버원 자리를 뺏기는 거 아냐?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그는 직원들의 시선을 피하며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휴대폰에다 낮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알았지? 오늘 출동해.” 

전화를 끊은 세두의 얼굴에 야비한 미소가 번졌다. 


사장이 마지막 도장을 찍자 치우는 서류를 움켜쥐고 문을 나섰다. 그의 뒤에서 사장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공장 마당에 주차된 11톤 트럭의 적재함에는 볼트와 너트를 포장한 박스가 가득 실려 있었다. 춘식과 민수는 밧줄을 양쪽에서 잡고 박스를 고정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때 승용차가 공장으로 들어오더니 끼익 소리를 내며 트럭 앞을 막아섰다. 곧이어 4명의 어깨가 차에서 내렸다. 그중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외쳤다. 

“지금 누구 맘대로 내 물건에 손대는 거냐!” 

겁에 질린 춘식이 적재함에 올리려던 박스를 떨어뜨리자 그의 발등을 찍었다. 춘식은 비명을 지르며 한 발로 깡충깡충 뛰었다. 

민수는 치우에게 구원의 시선을 보냈다. 치우는 턱으로 사무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물건은 우리가 접수하기로 했으니 사장에게 확인해 보지 그래?” 

스포츠머리가 재빠르게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선글라스에게 귀속말을 했다.

“그래도 그렇게는 안 돼! 너희 빚만 돈이고, 우리 돈은 휴지냐? 심장에 기스 나지 않으려면 물건을 두고 가. 그러면 동업자로서 조용히 보내줄게. 오늘 내 탄신일이라 특별히 봐주는 거야.”

“네가 생일날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고 싶어가 보네.”

“오늘 재수 더럽구먼.”

선글라스는 걸쭉한 가래침을 땅에 뱉었다. 치우는 피식 웃으며 트럭 쪽으로 여유롭게 걸어갔다.

“다 실었으면 출발하자.”

선글라스가 치우의 앞을 막고는 순식간에 주먹을 날렸다. 치우는 잽싸게 피하며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선글라스는 수술대 위의 개구리처럼 땅에 뻗었다.

순간 당황한 어깨들이 눈짓을 주고받으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치우는 팔꿈치로 스포츠머리의 턱을 쳐 올렸다.그러자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그때 뒤에 있던 대머리가 치우의 등을 내리쳤다. 그 충격으로 그의 이마가 바퀴 휠에 부딪혀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이 틈을 타 달려드는 대머리의 가슴을 향해 치우가 다리를 날리자 그는 벌렁 자빠졌다.

민수가 대머리의 배에 올라타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무수히 가격했다. 귀고리를 한 어깨가 춘식에게 달려들었다. 춘식은 날래게 치우 뒤로 숨고 땅에 떨어진 볼트를 주워 그에게 던졌다. 어느새 귀고리의 몸 여기저기에 멍이 생겼다. 귀고리가 씩씩거리며 춘식에게 무작정 돌진했다. 치우는 춘식을 옆으로 밀치며 발로 귀고리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비틀거리는 귀고리의 사타구니를 춘식이 걷어차자 그는 땅에 고꾸라졌다.

이때 선글라스가 어딘가에 지원 요청을 했다.

“이제 너희는 다 뒈졌어.”

이 광경을 본 치우가 소리쳤다.

“빨리 철수하자!”

춘식은 운전석으로 뛰어갔고, 민수가 그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치우가 차에 올랐다. 춘식이 시동을 걸려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차 키가 없었다.

“차 키를 잃어버렸나 봐. 어떡하지?” 

치우는 차에서 내려 싸웠던 곳을 둘러보니 차 키 뭉치가 있었다. 어깨들은 더 이상 덤비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길을 비켜주었다. 

트럭이 공장을 나오자, 연락을 받고 온 어깨들의 승합차가 앞을 막았다. 춘식은 핸들을 꺾어 승합차의 옆구리를 쳐서 빠져나왔다. 절반이 떨어져 덜렁거리는 범퍼가 백미러에 비쳤다. 


트럭은 국도로 진입했다. 승합차는 뒤에서 쫓아오고, 승용차는 트럭 옆에 붙었다. 차간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승용차 조수석에서 선글라스가 몸을 내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도로 양쪽에는 차들이 생생 달리고 있었다.  

치우는 잠깐 생각한 후 춘식에게 말했다. 

“속도를 좀 줄여봐.” 

“야, 미쳤어? 이렇게 밟아도 잡힐 판에 무슨 소리야!” 

“일단 내 말대로 해.” 

춘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속도를 줄였다. 치우는 창문을 열고 팔을 뻗어 적재함의 고리를 잡고 올라갔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박스에서 볼트와 너트를 꺼냈다. 그리고는 트럭 뒤의 승합차를 겨냥해 연신 던졌다. 유리창에 금이 가고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자, 운전하던 어깨가 피하려고 핸들을 획 돌렸다. 

‘꽝!’ 

승합차는 도로의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순간 안에 있던 어깨들이 거꾸로 넘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엔진에서 불규칙한 소음과 하얀 연기가 솔솔 새어 나왔다. 이어 차에서 서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이번에는 치우가 힘겹게 박스를 통째로 들어 승용차 지붕에 내리 꽂았다. 차 안은 상자가 떨어질 때마다 움푹 파인 철판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끝으로 던진 박스가 운전석으로 떨어지자, 앞이 가려진 어깨는 핸들을 놓쳤다. 차는 보도블록을 넘어 논바닥으로 처박혔다. 어깨들은 죽는 시늉을 하며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기어 나왔다. 

치우는 쓰러진 어깨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도로 위에는 볼트와 너트들이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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