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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06. 2024

타락의 이유 - 2

그날 저녁, 세 사람은 드럼통 탁자에 둘러앉았다. 석쇠에서 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들은 술잔을 부딪치고는 한꺼번에 마셨다. 치우의 얼굴 여기저기에는 상처가 나 있었고, 민수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춘식만 멀쩡했다.

“두 사람 얼굴이 완전 컬러풀하네!” 

춘식이 번갈아 보며 놀렸다.

“뭐야? 형은 의리도 없이 도망만 다니고, 절뚝거리는 나도 싸우는데 말이야.” 

“무슨 소리야? 내 할당은 다 했다고. 나에게 사타구니를 차인 귀고리 놈, 아마 고자가 됐을걸.” 

민수가 발끈하자 춘식은 실실 웃었다.

“조 실장, 아니 조세두. 그 자식, 힘든 일은 우리에게 시키고 자기는 쉬운 일만 처리하고. 금 사장은 이런 거 알기나 하냐?” 

“춘식 형 말이 백 번 맞아. 진상 일은 우리가 다 하고, 자기가 한 것처럼 금 사장에게 보고하고 말이야.”

웬만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민수가 열을 올렸다.

“그뿐이야? 금 사장 앞에서 아부하는 꼴이란...” 

춘식이 손바닥을 비비며 굽실거리는 흉내를 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치우는 대꾸 없이 술만 마셨다.

“근데 낮에 난장질한 애들 있잖아. 오늘 우리가 거기에 갈 줄 어떻게 알았지? 마치 우리 시간에 맞춰서 나타난 것 같아. 생각할수록 이상하네.” 

민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혹시 조 실장 작품 아닐까? 그 자식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치우 너를 엿 먹여서 금 사장에게 점수 따려고 말이야. 요즘 자기가 넘버원이라며 떠벌리고 다닌대. 우리가 뭐 조폭인가? 넘버원, 투게. 다 너를 시기해서 그런 거야.” 

춘식의 말에 술잔을 든 치우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수고 많았어. 나 먼저 갈게.” 

“혼자 가면 어떡해? 저녁에 술집 가기로 약속했잖아.” 

“다음에. 그리고 머리통이랑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야.” 

“참, 형은. 술집에서 알코올로 치료받을 일 있어? 매번 가게.” 

민수가 눈치를 주며 춘식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치우는 선술집을 나서자마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동양캐피탈 도 실장입니다.”

“그런데 왜요?”

“오늘 공장에서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제가 가져온 물건은 다시 돌려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희와 싸운 사람들을 사장님께서 부르신 건가요?”

“아니요, 갑자기 온 거예요. 아직 돈 갚을 날도 멀고, 남은 것도 얼마 안 돼요.”

처음에는 퉁명스럽던 사장이 물건을 준다는 말에 협조적으로 나왔다. 치우는 굳어진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김 실장, 뭐 좀 알아봐 줘... 조만간 한잔 살게.”

그는 전철역 계단을 내려가면서 중얼거렸다.

“설마, 춘식의 말이 사실일까?”


선술집에서 춘식과 민수는 여전히 술병과 씨름하고 있었다.

“치우 형은 어쩌다 금 사장 밑에서 일하게 됐어?”

“치우는 인생의 파도가 많은 놈이지. 나도 중학교 때 치우와 헤어져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언젠가 술에 취해 금 사장과의 인연을 말한 적이 있어. 아마 치우가 군대에 있을 때였던 것 같아. 당시 아버지는 아파트 시행사 사장이었는데, 시공사의 부실공사로 입주민들이 치우 아버지를 고소했대. 재판까지 갔는데, 예상과 달리 치우네가 졌어. 그래서 살던 집도 경매로 넘어가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무너졌지.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결국 간경화로 1년 만에 돌아가셨어.

게다가 치우가 제대하자마자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는데, 말기라서 수술비가 몇천만 원이 필요했대. 6개월 전 휴가 나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복귀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자신은 휴학생이고 여동생도 봉제공장에서 적은 월급을 받는 형편이라, 거액의 수술비를 마련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지.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한 이후, 친척들도 그를 외면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 학생인 치우에게 은행의 문턱은 높았고, 학자금 대출은 고작 200~300만 원에 불과했지. 절박한 심정으로 수십 곳의 사채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모두 거절당했어.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금 사장 사채 사무실이었고, 담보나 보증인이 없는 치우에게 금 사장이 엄마의 수술비를 빌려준 거야.

“정말? 그 지독한 금 사장이?”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어.” 

“그게 뭔데?” 

“자기 밑에서 일하는 것! 치우의 강한 체격과 기질이 해결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거지.” 

“그래서?” 

“엄마를 살리는 것이 최우선인 치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금 사장은 그에게 은인과 같은 존재였을 거야.” 

심란한 표정의 춘식이 말을 이었다. 

“근데 더 안타까운 것은 엄마가 수술 중에 돌아가셨다는 거야. ‘조금만 일찍 왔어도 살릴 수 있었는데.’ 의사의 이 한마디가 치우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았지. 지금도 치우는 돈만 있었더라면 엄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 엄마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이 전부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고 있어. 그는 이 모든 비극이 돈, 오로지 돈이 없어서 발생한 일이라고 확신하지. 

유일한 여동생은 대학에 붙고도 등록금이 없어 포기해야 했고, 치우도 결국 학교를 중퇴했어. 빌린 돈은 모두 날아갔지만 두 사람의 계약은 여전히 유효해서 지금까지 금 사장 밑에서 일하게 된 거야.”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치우 형이 돈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였네.” 

“그래도 우리에게는 잘해 주잖아.” 

“그건 맞아. 근데 치우 형이 혜원 씨를 만난 이후로 일처리가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뭐가?” 

“둔하긴. 예전에는 돈을 빨리 받으려고 대화보다는 주먹으로 해결했잖아. 어떤 면에서는 조 실장보다 더 잔인했지. 그런데 혜원 씨와 사귀고 나서는 가능한 한 말로 위협하고 금 사장 몰래 빚도 연장해 주곤 하잖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 아냐?.” 

“그러네. 음, 음. 그게 바로 사랑의 힘이느니라~” 

춘식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훈계하듯 말했다. 이어 그의 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우리 둘만이라도 그 술집에 가지 않을래?” 

“형한테 내가 졌다. 정말 졌어.” 

민수는 질린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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