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세 사람은 드럼통으로 만든 탁자에 둘러앉았다. 석쇠에서 고기가 구워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들은 술잔을 부딪치고 동시에 마셨다. 치우의 얼굴에는 여기저기에는 상처가 있었고, 민수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춘식만 멀쩡했다.
“두 사람 얼굴이 정말 화려하네!”
춘식이 번갈아 보며 놀렸다.
“뭐야? 형은 의리도 없이 도망만 다니고, 절뚝거리는 나도 싸우는데 말이야.”
“무슨 소리야? 내 할당은 다 했다고. 나에게 사타구니를 차인 귀고리 놈, 아마 고자가 됐을걸.”
민수가 발끈하자, 춘식은 실실 웃었다.
“조 실장, 아니 조세두. 그 자식은 힘든 일은 우리에게 시키고 자기는 쉬운 일만 처리해. 금 사장은 이런 거 알고나 있을까?”
“춘식 형 말이 맞아. 진상 일은 우리가 다 하고, 자기가 한 것처럼 금 사장에게 보고하고 말이야.”
웬만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민수가 열을 올렸다.
“그뿐이야? 금 사장 앞에서 아부하는 꼴이란.”
춘식이 손바닥을 비비며 굽실거리는 흉내를 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치우는 대꾸 없이 술만 마셨다.
“그런데 낮에 난장질한 애들 있잖아. 오늘 우리가 거기에 갈 줄 어떻게 알았지? 마치 우리 시간에 맞춰서 나타난 것 같아. 생각할수록 이상하네.”
민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혹시 조 실장 작품 아닐까? 그 자식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치우 너를 엿 먹여서 금 사장에게 점수 따려고 말이야. 요즘 자기가 넘버원이라며 떠벌리고 다닌대. 우리가 뭐 조폭인가? 넘버원, 넘버투 게. 다 너를 시기해서 그런 거야.”
춘식의 말에 술잔을 든 치우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수고 많았어. 나 먼저 갈게.”
“혼자 가면 어떡해? 저녁에 술집 가기로 약속했잖아.”
“다음에. 그리고 머리통이랑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야.”
“참, 형은. 술집에서 알코올로 치료받을 일 있어? 매번 가게.”
민수가 눈치를 주며 춘식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치우는 선술집을 나서자마자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동양캐피탈 도 실장입니다.”
“그런데 왜요?”
“오늘 공장에서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제가 가져온 물건은 다시 돌려놓겠습니다. 혹시 저희와 싸운 사람들을 사장님께서 부르신 건가요?”
“아니요, 갑자기 온 거예요. 아직 돈 갚을 날도 멀고, 남은 것도 얼마 안 돼요.”
처음에는 퉁명스럽던 사장이 물건을 준다는 말에 협조적으로 나왔다. 치우는 굳어진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김 실장, 뭐 좀 알아봐 줘. 조만간 한잔 살게.”
그는 전철역 계단을 내려가면서 중얼거렸다.
“설마, 춘식의 말이 사실일까?”
선술집에서 춘식과 민수는 여전히 술병과 씨름하고 있었다.
“치우 형은 어쩌다 금 사장 밑에서 일하게 됐어?”
“치우는 인생의 파도가 많은 자식이지. 나도 중학교 때 치우와 헤어져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언젠가 술에 취해 금 사장과의 인연을 말한 적이 있어. 아마 치우가 군대에 있을 때였던 것 같아. 당시 아버지는 아파트 시행사 사장이었는데, 시공사의 부실 공사로 입주민들이 치우 아버지를 고소했대. 재판까지 갔는데, 예상과 달리 치우네가 졌어. 그래서 살던 집도 경매로 넘어가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무너졌지.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결국 간경화로 1년 만에 돌아가셨어.
게다가 치우가 제대하자마자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는데, 말기라서 수술비가 몇천만 원이 필요했대. 6개월 전 휴가 나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복귀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자신은 휴학생이고 여동생도 봉제공장에서 적은 월급을 받는 형편이라, 거액의 수술비를 마련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지.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한 이후, 친척들도 그를 외면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 학생인 치우에게 은행의 문턱은 높았고, 학자금 대출은 고작 200~300만 원에 불과했지. 절박한 심정으로 수십 곳의 사채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모두 거절당했어.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금 사장 사채 사무실이었고, 담보나 보증인이 없는 치우에게 금 사장이 엄마의 수술비를 빌려준 거야.”
“정말? 그 지독한 금 사장이?”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어.”
“그게 뭔데?”
“자기 밑에서 일하는 것! 치우의 강한 체격과 기질이 해결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거지.”
“그래서?”
“엄마를 살리는 것이 최우선인 치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금 사장은 그에게 은인과 같은 존재였을 거야.”
심란한 표정의 춘식이 말을 이었다.
“근데 더 안타까운 것은 엄마가 수술 중에 돌아가셨다는 거야. ‘조금만 일찍 왔어도 살릴 수 있었는데.’ 의사의 이 한마디가 치우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았지. 지금도 치우는 돈만 있었더라면 엄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 엄마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이 전부 자기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고 있어. 그는 이 모든 비극이 돈, 오로지 돈이 없어서 발생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어.
유일한 여동생은 대학에 붙고도 등록금이 없어 포기해야 했고, 치우도 결국 학교를 중퇴하게 되었어. 빌린 돈은 모두 날아갔지만 두 사람의 계약은 여전히 유효해서 지금까지 금 사장 밑에서 일하게 된 거야.”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치우 형이 돈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였네.”
“그래도 우리에게는 잘해 주잖아.”
“그건 맞아. 근데 치우 형이 혜원 씨를 만난 이후로 일 처리 방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뭐가?”
“둔하긴. 예전에는 돈을 빨리 받으려고 대화보다는 주먹으로 해결했잖아. 어떤 면에서는 조 실장보다 더 잔인했지. 그런데 혜원 씨와 사귀고 나서는 가능한 한 말로 위협하고 금 사장 몰래 빚도 연장해 주곤 하잖아.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 아니야?”
“그러네. 음, 음. 그게 바로 사랑의 힘이느니라~”
춘식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훈계하듯 말했다. 이어 그의 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우리 둘만이라도 그 술집에 가지 않을래?”
“형한테 내가 졌어. 정말로 졌어.”
민수는 질린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