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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선정 - 2

by 이인철

“이제 검찰과 변호인의 기피 신청은 한 번씩 남았습니다. 검찰 측, 질문이 있으신가요?”

석낙은 고개를 저었다. TF팀의 조사 결과, 그는 적합한 후보자로 판단되었다.

“변호인 측은요? 그러면 배심원 선정을 마치도록….”

“아니요, 질문이 있습니다.”

지상은 방청석으로 다가가며 계산했다.

‘45명의 후보자 중 9명이 선정되었고, 지금까지 탈락한 후보자는 내가 4명, 석낙이 4명으로 8명이다. 남은 28명 중 반드시 연우가 뽑혀야 한다. 확률은 28 대 1이다. 하지만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어!’

“17번 후보님, 열 명의 범죄자를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될까요? 아니면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더라도 열 명의 범죄자를 처벌해야 할까요?”

“저는 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4번 후보님은요?”

“한 명에게는 안타깝지만, 열 명의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옳습니다.”

‘좋아, 걸려들었어!’

“4번을 기피합니다.”

보통 이 질문에 대해 피고인 측은 전자의 후보자를 선호하고 검찰 측은 후자를 선호한다. 이를 알고 있는 석낙은 17번의 답변에 혼란스러웠다. TF팀의 정보에 따르면, 17번은 검찰 측에 유리한 후보자였다. 그는 마지막 기피권을 남겨두기로 했다.

한 장의 번호표가 심 판사에게 넘어갔다. 지상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다.

“12번 후보님께서 배심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드디어 기도가 통했어!’

연우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신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변호인의 기피 신청은 끝났고, 검찰 측은 한번 남았는데 하시겠습니까?”

사실, 석낙도 12번의 선정에 기뻐했다.

후보자 신상 파악으로는 12번은 도원그룹 취업 준비생이다. 더구나 그의 여동생은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보다 검찰의 안성맞춤인 우군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돌다리도 몇 번씩 두드리고 건너야 해.’

“12번 후보님, 지속적으로 괴롭힘과 폭행을 당하던 사람이 우발적으로 가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 행위는 과실치사로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정당방위로 간주 될까요?”

연우는 배심원 선정 과정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검찰에 유리한 답변은 피고인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이었다. 반대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지나치게 확고한 신념을 드러내면 선정에서 제외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지상의 조언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억제했다.

‘이제 답이 나왔군. 애매하게 검찰 편을 드는 거야.’

“우선,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었던 만큼 정당방위로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연우는 자신의 가치관과는 정반대의 말을 했다.

‘누구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얼마나 많은가!’

석낙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12번 후보님, 혹시 피고인과 이전에 아는 관계가 아니신가요?”

순간 연우는 놀라서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급히 표정과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모르는 사이입니다.”

“기피하지 않겠습니다.”

“이상으로 배심원 선정을 마칩니다.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배심원에서 탈락한 분들은 소정의 여비를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직원이 배심원 번호가 적힌 명찰을 나누어 주었다. 연우는 9번 명찰을 가슴에 달았다.

재판장은 배심원 유의 사항을 설명했다.

“지금부터 배심원은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립니다. 이는 배심원의 신변 보호를 위한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중 한 분은 예비 배심원입니다. 예비 배심원은 평의와 평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는 배심원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집니다. 재판에 몰입하기 위해 예비 배심원은 변론이 끝난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또한, 배심원 상호 간에는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거나 논의할 수 없습니다. 재판 절차 외에는 사건 정보를 수집하거나 조사해서는 안 됩니다…”

심 판사의 말이 길어질수록 연우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는 이때까지도 자신이 예비 배심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배심원 선정은 10시 40분에 종료되었고, 재판은 11시부터 시작된다.


석낙이 복도를 지나가자, 기다리던 기탁이 물었다.

“배심원 선정은 잘 끝났어?”

“뭐, 특별한 일은 없었어. 형식적으로 하느라 고생만 했지.”

“그렇긴 해. 우리 리스트에 없는 후보자만 피하면 되니까.”

“근데 깜짝 놀랐어.”

“왜?”

“강 변이 후보자들에게 가족이나 친척 중에 교통사고 피해자가 있는지 물어보더라고.”

“그랬겠네. 우리가 중점적으로 조사한 부분이니까. 그래서?”

“재빠르게 유도성 질문을 한다고 공세를 펼쳤지.”

“강 변은 어떻게 반응했어?”

“뭘, 재판장에게 주의를 받으면서 쪽만 팔렸지.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재판 시간이 다가와서.”

“너무 힘 빼지 마. 이미 끝난 게임이니까.”

“물론이지. 수석과 차석의 합작품이잖아.”

서로의 미소에서 끈끈한 전우애가 느껴졌다.


법정을 나온 지상에게 수진이 다가왔다.

“선정됐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호!’

수진은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근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고 검사와 치열한 혈투를 벌였지. 배심원 분석은 점심시간에 하자고. 곧 재판이니까 들어가자.”

“나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 갈게.”

그녀는 가다가 석낙과 마주쳤다.

“어이, 하 변.”

‘재수 없는 놈!’

수진은 그의 아는 체를 무시하고 쌩 지나쳤다.

이어 작년 사건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주민들의 진술은 확보했어요. 근데 주변에 CCTV가 없어서….”

“변호사님은 변호만 잘하시고 수사는 제가 한다고요. 야, 박민호. 너는 분명히 네 범행을 자백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네.”

“인마, 장난해? 왜 갑자기 말을 바꿔!”

석낙은 그를 윽박질렀다.

“검사님, 민호에게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너무 뭐요? 내가 협박을 했나요? 거짓 진술을 강요한 것도 아니고, 뭐 어쨌다고요? 다시 물을 게. 경찰서에서 네가 했다고 인정했잖아! 맞지? 아니야?”

“맞, 맞아요.”

민호는 두려움에 떨며 대답했다. 수진이 책상을 탕 쳤다.

“진술을 거부하겠어요. 민호야. 검사님은 네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이제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정, 그렇게 억울하면 재판에서 이기면 돼죠.”

석낙은 빈정거렸다.

“지금 민호가 보육원에 있는 아이라고 해서 무시하는 건가요? 검사님도 흙수저로 알고 있는데 이러면 안 되잖아요!”

“나는 출신에 상관없이 원칙에 따라 조사할 뿐입니다.”

그녀는 민호를 데리고 나가며 문을 꽝 닫았다. 화들짝 놀란 석낙이 코를 찡그렸다.

“저게 지상이랑 어울리더니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석낙은 기소율을 높이기 위해 피의자의 인권을 유린하며 강압 수사를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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